결혼 4년차 직장인 김승철 씨(33)는 아이를 가질 엄두를 못 낸다. 대기업에 다니는 아내가 직장을 이유로 출산을 미루고 있어서다. 지난해 결혼한 강정현 씨(29·여)도 임신을 늦추고 있다. 출산 후 복직이 어렵기 때문이다. 직장인 김희선 씨(31·여)는 얼마 전 둘째 아이 갖는 것을 포기했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 않은 데다 정부 혜택도 거의 없어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 김 씨가 정부로부터 지원 받은 혜택은 임신·출산 진료비 20만 원이 전부다. 반면 2008년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직업여성의 경력 단절 주요인으로는 임신·출산으로 인한 퇴사 압력이 46.3%로 제일 높았다. 또 육아의 중요성 14%, 보육지원 미흡 12.2% 등 출산 및 육아와 관련된 이유가 72.5%를 차지했다.
2006년부터 4대 분야 237개 과제에 걸쳐 19조7648억 원이 투입된 제1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대한 정부 자체 평가 결과 사업시행 성과가 매우 미흡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유재중 한나라당 의원으로부터 입수한 국무총리실 저출산·고령사회 대책 추진협의회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는 “1차 기본계획 예산의 83%(16조4000억원)가 보육 관련 정책 부문에만 편중돼 일, 가정 양립 등 다양한 지원책 마련에 미흡했다”고 평가했다. 올 4월에 작성된 이 보고서는 “과제 수는 다양하나 대상이 저소득층에만 제한되고 특정 부문에만 편중되면서 내용의 충실도가 낮고 국민 체감도가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많은 예산을 쏟아 부은 보육·교육비 지원에 대해서도 유자녀 기혼여성의 19.7%만 해당 정책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여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이 정체되고 경력 단절 현상이 지속돼 재취업 포기로 연결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의 직접 보육예산은 2006년 7913억 원에서 올해 2조1275억 원으로 5년간 3배가량으로 증가했지만 합계 출산율은 2007년 1.25명 이후 2008년(1.19명)과 2009년(1.15명) 줄곧 하락했다. 유 의원은 “저소득층 중심의 보육지원 정책은 정작 출산 욕구가 높은 차상위층 이상 젊은 부부들에게 아무런 혜택도 주지 못하고 있다”며 “저출산 대책은 서민 대책과 구분해서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5년간의 시행착오 끝에 정부는 2차 기본계획부터 방침을 바꾸기로 했다. 추진협의회가 작성한 제2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 초안에 따르면 내년부터는 저소득층 중심의 1차 계획과 달리 맞벌이 가정으로 지원 대상을 확대하고 소득 수준에 따른 직접 비용 지원에서 자녀 수에 따른 지원으로 기준을 변경했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늘어나는 현실을 감안해 미혼모와 다문화가정 등에 대한 지원도 확대한다. 정부는 7월 중 2차 기본계획의 시안을 확정해 공청회를 열고 8월 국무회의 심의를 추진할 계획이다.
그러나 향후 추진 과정에서 저출산 관련 위원회의 양립으로 정부 부처 간 혼선이 예상된다. 정부에는 보건복지부 산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와 국무총리실 산하 저출산고령사회대책추진협의회가 공존하고 있다. 유 의원은 “복지부와 총리실 산하에 각각 같은 위원회를 별도로 두고 있는 것은 행정 비효율과 자원 낭비만 초래한다”며 “당장 내년부터 5개년 계획을 시행해야 하는데 아직 기본 안조차 확정하지 못해 예산이 제대로 반영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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