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잘 키운 장기 하나 최상위권 부럽잖네∼ 고교 ‘달인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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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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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등수 말고도 길은 있다
톡톡 튀는 재주로 “시선집중”


《요즘 ‘달인’ 열풍이 불고 있다. TV 코미디도 ‘달인’이란 코너가 인기며, 사회 각계각층에서 자신만의 노하우를 쌓아 도(道)의 경지에 이른 이들을 보여주는 ‘생활의 달인’이란 프로그램도 각광 받는다.
당신은 아는가. 고등학교에도 달인들이 있다는 사실을.
친구들 사이에 달인으로 불리며 ‘신통방통한 아이’로 통하는 이들은 그저 유행어를 따라하거나 연예인 성대모사를 하던 ‘구시대적 달인’이 아니다. 대입에서 자기주도학습이 중요해지고 입학사정관제가 확대 실시됨에 따라 자신의 장기를 공부에 활용하거나 자신의 비전을 일구는 데 지혜롭게 사용하는 신종 달인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고교생 달인들을 유형별로 살펴보자.》

공부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자신의 장점을 독특한 공부법으로 승화시키는 유형. 시험 보기 전 몇 시간만 공부하고도 좋은 성적을 받는 ‘벼락치기의 달인’, 독특한 암기법으로 영어, 사회 등 암기과목에서 기가 막힌 성적을 올리는 ‘암기의 달인’ 등이 이에 속한다.

고3 이모 양(18·경남 창원시)은 친구들 사이에서 ‘성대모사의 달인’으로 불린다. 특히 문제풀이를 할 땐 말끝을 올리며 “그렇지요∼오”를 반복하는 수학 선생님과 “이건 뭐다? 중요한 공식이다!”를 큰 소리로 외치며 물리 공식을 창문, 출입문, 교탁 등 교실 곳곳에 적는 물리 선생님의 성대모사는 이 양의 주특기다.

하지만 이 양은 선생님들의 억양을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의 성대모사가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는 진짜 이유는? 바로 그가 개발한 이른바 ‘모사(模寫·똑같이 본뜸) 공부법’ 때문이다.

이 양은 평소 ‘수학 선생님은 공식을 칠판 한쪽 귀퉁이에 써놓은 후 문제를 푼다’ ‘물리 선생님은 중요한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공식을 3회 반복해 적는다’ 같은 과목별 선생님의 수업 습관이나 문제풀이 방법까지 꿰뚫는다. 복습하거나 시험공부를 할 때 이들 선생님의 말투와 행동 뿐 아니라 문제풀이법까지 똑같이 따라하는 것.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를 물어 와도 이 양은 ‘개인기’를 활용한다. “이 문제는 왜 중요할까요? 그렇지요∼오. 중요한 미분 공식이 사용되기 때문이지요∼오. 그렇지요∼오”라며 재미있고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한다. 이런 ‘모사 학습법’ 덕분에 이 양은 친구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1학년 때 70점대에 머물던 수학성적도 2학년 때부턴 90점대로 수직 상승했다.

이 양은 “수학이나 과학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를 묻기 위해 날 찾는다”면서 “성대모사란 장기로 인기와 성적을 동시에 관리하는 일석이조 효과를 보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또래집단의 트렌드나 최신 이슈에 민감해하면서 이들 분야에서 각별한 장기를 발휘해 스스로 존재가치를 높이는 유형. 교복이나 슬리퍼를 최신 유행하는 스타일로 ‘개조’해 주는 ‘리폼의 달인’, 교사에게 절대 들키지 않는 화장법으로 한껏 멋을 내고 다니는 ‘화장의 달인’ 등이 여기에 속한다.

공부와는 무관해 보이는 장기인지라 선생님들에겐 ‘쓸데없는 특기’를 가진 학생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이 문제. 이 유형의 달인들은 친구와 선생님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구사한다.

고3 김모 군(18·서울 은평구)은 ‘운동의 달인’이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뒤편에서 팔굽혀펴기, 윗몸일으키기를 10회씩 하는 것은 기본. 교실 뒤에 5, 8, 10kg 등 무게별로 아령을 마련해 놓고 근력운동도 한다. 꾸준한 운동을 통해 만든 ‘식스팩’(배에 새겨진 ‘王’모양 근육)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선 ‘우리 학교 권상우’로 불릴 정도다.

하지만 반 25등인 성적 탓에 선생님들 사이에선 ‘뇌는 없고 몸만 있는’ 학생으로 여겨졌던 김 군. 그는 ‘어떻게 하면 내 이미지를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운동을 이용한 이미지 개선 전략을 짰다. 대입 수험생이라 운동량이 부족한 친구들에게 운동을 통해 도움을 주면서 ‘착하고 바른 학생’의 모습을 일구는 것이다.

우선 김 군은 스스로 ‘김○○의 3분 스트레칭 타임’을 만들었다. 쉬는 시간마다 교실 앞으로 나가 반 친구들에게 헬스장에서 배운 간단한 스트레칭을 알려줬다. 또 친구들이 언제든 운동을 할 수 있도록 교실 뒤편에 작은 ‘헬스장’을 만들었다. 훌라후프나 아령처럼 간단한 것부터 벤치프레스(누운 채 역기를 들어올리는 기구)처럼 거대한 운동기구까지 집에 있는 운동기구는 모조리 학교로 가져다놓고 시시때때로 친구들의 운동을 도왔다. 결과는?

“이제 모든 선생님이 저를 ‘비록 성적은 다소 낮지만 성품이 훌륭한 학생’이라고 평가해 주세요. 얼마 전엔 담임선생님이 저를 체육부장에 임명해 주셨죠. 제가 만든 작은 헬스장에서 운동하기 위해 다른 반 친구들도 우리 반을 찾으면서 학교에서 더 유명해졌어요(웃음).”(김 군)

자기 특기를 다양한 체험활동이나 수상실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스펙’으로 승화시키는 유형이다.

초등 6학년 때부터 사진 찍는 것이 취미였던 서울예술고 2학년 이주영 양(17·서울 종로구). 중학교 때부터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순간포착의 달인’으로 불렸다. ‘무조건 예뻐 보이는’ 사진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을 기가 막히게 포착한 사진을 찍어내는 재주가 남달랐기 때문이다.

“주로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 노는 모습이나 수업 끝나고 야외에 나가 함께 공부할 때의 모습을 찍었어요. 예고 없이 카메라를 들이대는 바람에 제가 사진을 찍는 걸 두려워하는 친구도 있었죠. 하지만 나중엔 대부분의 친구가 익살스러운 표정이나 재미난 행동을 하면서 촬영을 즐겼어요.”

이 양은 올해 2월 프랑스어 선생님으로부터 주한프랑스대사관이 주최하는 ‘전국 고교생 2010 프랑코포니 사진 콘테스트’가 있다는 정보를 전해들었다. 자신의 취미생활을 살릴 기회라고 생각한 이 양은 대회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작품제출일 한 달 전부터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대회 참가 일주일 전까지도 만족할 만한 사진을 찍지 못해 낙심한 이 양. 그때 불현듯 ‘나만의 장기를 살려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제출하면 어떨까’란 생각이 스쳤다.

이 양은 예전에 여행을 다니며 찍었던 사진, 친구들과 함께 찍었던 사진 중 최대한 자연스럽고 주제에 맞는 사진을 골라 제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대회에서 최고상인 주한 프랑스 대사관 특별상을 받은 것이다.

이 양은 “사진 촬영이란 취미생활은 사물을 관찰하는 능력을 키워주고 그림을 그릴 때도 남다른 구도를 잡도록 해준다”면서 “사소한 장기라도 목표를 세워 거기에 맞게 개발하면 나만의 특별한 경쟁력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승태 기자 st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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