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연기자 60% “성접대 요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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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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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실태조사… 31.5%는 성추행 피해도
재력가-PD-제작사 대표-유력 인사가 요구

“이쪽 일을 하려면 세상을 더 알아야 해. 남자도 알아야 하고.”

지난해 옷을 사주겠다는 기획사 대표를 따라나선 20대 중반 여성 연기자 A 씨는 대표가 모텔로 끌고 가며 이렇게 말하는 순간 소스라치게 놀랐다.

40대 중반 여성 연기자 B 씨는 “광고주와 모델을 연결하는 브로커로부터 속칭 ‘스폰서’ 제의를 받았다. 돈을 원하는 만큼 다 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다”고 털어놨다.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연예인들의 인권 실태가 처음으로 조사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해 9월부터 12월까지 여성연기자 111명과 연기지망생 240명 등 35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 면접을 진행해 분석한 내용을 담은 ‘여성연예인 인권상황 실태조사’ 결과를 27일 발표했다.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여성연기자 10명 중 6명(60.2%)은 기획사 관계자나 지인들으로부터 유력인사에 대한 성 접대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접대 상대는 재력가 25명(43.9%), PD(또는 감독) 22명(38.6%), 제작사 대표 13명(22.8%), 기업인 9명(15.8%), 광고주 8명(14.0%), 방송사 간부 7명(12.3%), 기획사 대표 7명(12.3%), 정관계 인사 5명(8.8%) 순이었다. 기획사 관계자나 PD 등으로부터 성폭행(강간) 등을 당한 적이 있다고 말한 연기자는 6.5%나 됐고, 신체 일부(가슴, 엉덩이 등)를 성추행 당했다고 답한 비율도 31.5%였다. 특히 여성 연기자 2명 중 1명(48.4%)은 성 접대를 거절했을 때 캐스팅이나 광고출연 등에서 불이익을 당했다고 답했다.

유력인사나 재력가에게 지속적으로 접대를 하고 후원을 받는 ‘스폰서’ 제안을 받은 연기자도 응답자의 55%에 달했다. 20대 초반 연기지망생 C 씨는 “아빠 같은 사람이 ‘내 애인이 돼주면 원하는 것은 뭐든 다해 주고, 나는 너의 젊음을 사겠다’는 제안을 한 적이 있다”고 고발했다. 인권위는 “특히 재정이 부실한 기획사일수록 여성 연예인을 통해 후원자를 받아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연예경영 사업자 자격을 엄격히 정하는 법을 제정하고 상담 창구나 멘터 시스템 등을 운영하며 인권 교육을 할 수 있는 연예인협회(가칭) 등을 설립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박승헌 기자 hpar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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