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정 ‘억지 자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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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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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부 “도입 첫해 성과내라” 등급 매겨… 일선학교 “채찍질하니…”
계획없던 과목-시간 조정
수업 감소 교사 대책도 없어
입시위주 편성 변질 조짐도

“학교 교육과정 자율화라면 학교가 교육과정을 무리하게 바꾸지 않을 자유도 있는 것 아닌가요. 정부가 채찍질하니 별수 없이 수업 시수를 조정할 수밖에 없었죠.”

서울 강남의 A초등학교는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해 6월 ‘학교 자율화 추진방안’을 발표할 때만 해도 특별히 수업 시수를 조정할 계획이 없었다. 학교 자율화의 주요 내용은 2010년부터 학교마다 수업 시수의 20%를 자율적으로 증감할 수 있고, 특정 과목을 한 학기에 몰아서 이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A초등학교는 현재 교육과정에 문제가 없기 때문에 교육과정을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달부터 갑자기 사정이 달라졌다. 교과부가 16개 시도교육청별로 ‘자율화 추진 실태 점검 결과’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자율화 부문에서 B등급을 받은 서울시교육청은 “수업 시수 20% 증감과 집중이수 등 가시적 성과가 나타나도록 노력하라”는 지적 사항을 내려 보냈다. 교과부는 “3월 중 실제 학교의 교육과정 자율화 운영 상황을 다시 점검하겠다”고 밝혔다. A초등학교는 어쩔 수 없이 국어와 사회 과목 시수를 조금 늘리고 영어 시수를 줄였다.

올해는 정부가 주도하는 학교 자율화가 학교 현장에 적용되는 첫해다. 학교 자율화의 핵심은 ‘교육과정 자율화’. 자율화 방안이 발표됐을 때까지만 해도 “국어 영어 수학 등 일부 교과만 수업 시수가 늘어나고 다른 교과는 대폭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았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아직까지 큰 변화가 없다. 한 고교 교장은 “중·고등학교에서 수업 시수를 조정한다는 것은 과목별 교사 수를 조정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자율권을 쓰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교사들이 학교 근무 기간에 묶여 있는 데다 당장 시수가 줄어드는 과목 교사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책조차 없기 때문이다.

일부 학교에서는 학교 자율화에 따라 교육과정만 재편했다. 서울 종로구의 B중학교는 올해 신입생부터 1학년 체육 시간을 대폭 늘린 만큼 2학년 체육시간을 줄였다. 1학년 1학기에는 음악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2학기에는 음악 대신 미술을 집중적으로 한다. 과목별 수업 시수는 그대로다. 한 체육교사는 “운동을 꾸준히 해야 하는 것처럼 체육도 꾸준히 해야지 집중 이수로 끝낼 과목이 아니다”라며 “억지로 교육과정을 개편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입시 과목 위주로 수업이 늘어날 조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자율학교로 지정된 C고등학교는 국어 수학 영어 사회 과학 수업 시수를 최대 2배까지 늘리고 선택과목과 예술, 생활 과목의 시수를 줄였다. 전국 및 시도교육청별 연합학력평가 결과가 학교장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학력평가 과목 위주로 수업이 편성될 가능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올해 적용된 교육과정 자율화는 내년부터 적용되는 2009 개정 교육과정의 전초전”이라며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학교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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