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예슬-혜진양 죽인 사형수는 지금도 法의 빈틈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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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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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 주장하는게 비난받을 일인가”

납치-살해행적 쓴 기자에게
“우발적 치사… 명예훼손” 편지
“협박당했다” 담당검사 고소
檢 “자백할땐 언제고… 배신감”

2007년 12월 경기 안양에서 초등학생 2명을 성추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정성현 씨가 2008년 3월 사건현장에서 범행을 재연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7년 12월 경기 안양에서 초등학생 2명을 성추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은 정성현 씨가 2008년 3월 사건현장에서 범행을 재연하는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지난달 16일 동아일보사 편집국으로 내용증명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보낸 사람은 2007년 12월 25일 경기 안양시에서 우예슬(당시 8세), 이혜진 양(당시 10세) 등 여자 초등학생 2명을 성추행한 뒤 살해하는 등 부녀자 3명을 죽인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지난해 2월 대법원에서 사형 확정판결을 받은 정성현 씨(41)였다.

정 씨는 이 편지에서 “동아일보 1월 28일자 A8면에 실린 ‘법무부, 검찰 사법개혁 바람타고 형소법까지 개정 추진’ 기사에 인용된 나에 대한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며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안양 초등생 사건에서 성추행을 하지 않았고 두 어린이를 우발적으로 죽였지만 고의적 살인은 아니었다”며 “납치, 살해라고 쓰는 것은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또 “검찰에서 협박, 강요를 당해 허위자백을 했기 때문에 담당검사가 처벌을 받을 때까지 항고와 재정신청(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해 법원에 심판을 요청하는 절차)을 할 것”이라고 적었다. 정 씨의 주장과 달리 대법원은 검찰이 당초 적용했던 강간미수살인 혐의는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 대신 두 어린이를 강제추행하고 살해한 혐의(강제추행살인)를 유죄로 판단했다.

정 씨가 어떤 이유로 이 같은 주장을 펴는지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듣기 위해 12일 낮 12시 반경 정 씨가 수감돼 있는 서울구치소에서 그를 면회했다. “고소를 했으니 내 이름은 알고 있죠? 하고 싶은 말이 많은 것 같아서 찾아왔다”라고 말을 건네자 정 씨는 “재정신청 재판을 준비 중인데 그런 기사가 나가서 고소했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내가 무죄를 주장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자가 “두 아이를 목 졸라 죽인 것은 사실이지 않으냐”고 묻자 정 씨는 “목을 조른 것이 아니라 호흡기를 막아서 질식사한 거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편지에 적은 대로 “안양 초등생 사건은 내가 음주, 환각상태에 있을 때 일어난 일이며, 납치나 고의적 살인이 아니라 우발적 치사였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또 “법원이 내가 두 어린이를 납치하고 성추행했다는 증거가 없는데도 재판을 잘못했다” “담당검사를 다섯 차례나 고소했는데 기각돼 재정신청을 냈다. 검찰에서 조사받던 상황은 다 녹화돼 있다. 그걸 확인하면 (검사의 협박으로 허위자백을 했다는 것을) 다 알 수 있다”고 했다.

“당신의 주장대로 우발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고 해도 두 어린이가 죽었다. 가족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고 반성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정 씨는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수사기관에서 묻는 대로 다 인정한 것은 반성했기 때문이다. 내가 반성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수 없는 사실이다”라고 했다. 방 안 스피커에서 면회시간이 1분 남았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마지막으로 “법무부가 사형집행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알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그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재정신청 사건 재판에서 내가 한 일은 한 일대로, 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은 대로 밝혀질 것”이라고 답한 뒤 교도관을 따라 면회실을 떠났다.

정 씨 사건 수사를 담당했던 신성식 검사(사법시험 37회·공정거래위 파견)는 통화에서 정 씨가 자신을 여러 차례 고소한 데 대해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신 검사는 “조사과정에서 정 씨가 두 초등학생을 살해한 과정을 진술하면서 너무 담담하게, 어찌 보면 장난치듯 이야기를 해 야단을 친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이후로는 나나 정 씨 모두 사형이 선고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정 씨가 원하는 음식도 사다주고 개인적 이야기도 한참 들어줬다”며 “그렇게 가까워진 끝에 자백을 한 정 씨가 재판과정에서 자신의 진술이 유죄의 증거가 되자 마음을 바꾼 것 같다”고 말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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