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범죄현장 아무도 못봐? 버스가 봤다! 12만개의 ‘눈’ 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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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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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1대에 4개씩 설치
車 밖 도로모습까지 촬영”
경찰, 수사활용 시스템 추진
운수社에 설치비 보조 계획

“아무도 우리를 못 봤어. 완전범죄야.”

1월 24일 밤 전남 영광군 영광읍의 한 금은방. 3인조는 건물 밖에 위치한 전기차단기를 내렸다.

금은방 안 전등과 내부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가 꺼졌다. 이들은 즉시 금은방으로 들이닥치며 셔터 문을 내리고 금은방 주인 봉모 씨(69)의 눈과 귀를 테이프로 막고 손발을 묶었다. 사전준비를 철저히 한 이들은 순금, 보석 등 2억 원 상당의 금품을 챙기고 유유히 사라졌다. 하지만 3인조 강도가 미처 피하지 못한 ‘눈’이 있었다. 이들이 타고 도주한 차량이 당시 영광읍 남천리 도로를 지나던 버스 내에 설치된 CCTV에 찍혔다. 전남 영광경찰서는 이 영상자료를 토대로 지난달 5일 이들 중 2명을 검거했다.

○ 움직이는 CCTV

경찰이 버스에 달린 CCTV를 활용한 범죄자 수사시스템 구축을 추진하고 있다. 2일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은 국토해양부, 버스업계 관계자들과 함께 지난달 26일 ‘버스 CCTV 범죄수사 활용방안’ 간담회를 열어 버스 CCTV를 이용한 범죄수사용 증거자료 확보 방안을 논의했다. 경찰청은 전국버스운송연합회, 버스운송회사에 관련 공문도 보냈다.

경찰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버스 CCTV 활용에 나선 것은 갈수록 지능화, 조직화되는 범죄자들을 잡기 위해서다. 보통 버스 CCTV는 버스회사가 운전사의 요금 횡령, 손님들 간 폭행 등 버스 안 상황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한다. 하지만 내부만 촬영되는 것이 아니다. 1대의 시내버스에는 운전석, 출입문 주위, 차량 중간 등에 총 4개의 CCTV가 달려 있고 각도상 창문 너머 버스 밖 도로의 모습까지 생생하게 찍힌다. 버스 1대에 4개의 눈이 달린 셈이다. 경찰 관계자는 “건물 등에 설치된 방범용 CCTV는 미리 위치, 개수를 파악하고 대비할 정도로 범죄자들이 지능화됐다”며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범죄자들이라도 도로를 돌아다니는 버스 안의 CCTV까지 대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버스 CCTV는 최근 경찰 수사에 유용하게 활용되고 있다. 1월 22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발생한 1억 원 현금가방 날치기 사건도 마찬가지. 당시 오토바이를 탄 2인조가 보안업체 직원에게서 1억 원이 든 가방을 낚아챈 후 도주하는 데 5초도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 역시 버스 CCTV에 촬영됐다. 경찰은 버스 CCTV로 이들이 탄 오토바이의 종류(혼다 CB-400)를 확인해 용의자들의 범위를 좁히고 있다. 최근 김대중 전 대통령 묘역 방화 사건도 일대를 돌아다니는 버스 CCTV에 찍힌 자료를 활용해 수사 중이다. 2008년 숭례문 화재 때도 방화범 채모 씨(72)가 범행도구를 들고 버스에 타는 모습이 버스 CCTV에 찍혔다. 이를 시스템화하겠다는 것이다

○ 12만 개의 눈이 범죄자를 잡는다

전국버스운송연합회와 서울시 교통과에 따르면 현재 전국 시내버스 3만1000여 대 중 CCTV가 설치된 버스는 절반가량(1만6000여 대)이다. 서울의 경우 6800여 대의 버스에 2만2030여 개의 CCTV가 달려 있다. 전국 시내버스에 모두 CCTV가 설치되면 약 12만 개(3만×4개)의 ‘눈’이 도로를 훑고 다니는 셈이다.

현재 경찰이 운용하는 전국의 방범용 CCTV(고정)는 1만8000여 대에 불과하다. 버스 한 대당 4개의 CCTV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100만 원 정도로 경찰은 버스회사에 일정한 지원금을 보조해줄 계획이다. 강용길 경찰대 경찰학과 교수(41)는 “범죄자들이 언제 찍힐지 모르기 때문에 시내버스 CCTV 설치는 범죄예방 효과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기본적인 사생활이 침해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새사회연대 신수경 정책기획국장(35·여)은 “범죄수사 편의를 위해 국민의 기본적인 사생활이 모두 노출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밝혔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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