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에 금괴 30kg 두른 인천공항 ‘金경사’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25일 03시 00분


“삐~” 검색대 경고음이 울렸지만 그는 웃으면서 통과했다

밀반출 도운 경찰 2명 적발
경찰청, 공항대장 직위해제… ‘공항근무 3년 총량제’ 도입

인천공항경찰대 소속 현직 경찰관들이 대규모 금괴 밀반출을 돕다가 세관당국에 적발됐다. 인천공항세관은 금괴 30kg(시가 12억 원 상당)을 일본으로 밀반출하려 한 혐의(외국환관리법 위반)로 서모 씨(40)와 인천공항경찰대 외사과 유모 경위(45)를 구속했다. 또 같은 과 김모 경사(38)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공항세관과 경찰에 따르면 서 씨는 21일 밤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유 경위의 집에 찾아가 1kg짜리 금괴(4000만 원 상당) 30개를 건네며 “(금괴를) 공항 출국장 보안 검색대를 통과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이어 유 경위는 자신과 같은 과에 근무하는 김 경사를 불러 “금괴를 밀반출해 달라. 총대를 메주면 500만∼600만 원을 주겠다”며 금괴를 넘겨줬다. 김 경사가 ‘세관·출입국관리·검역구역’ 출입증을 갖고 있어 별도의 검문검색을 받지 않고 출국장을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김 경사는 다음 날인 22일 오전 9시경 허리에 찬 복대에 금괴 30개를 숨긴 채 공항세관과 공항공사, 경찰 등 상주기관 직원들이 드나드는 전용 검색대를 통과했다. 이 보안 검색대에는 금속탐지기가 있어 김 경사가 검색대를 지날 때 경고음이 들렸지만 검색대에 있던 직원들은 김 경사가 평소 업무상 자주 드나들어 잘 알던 사이라서 그냥 통과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검색대를 무사히 빠져나간 김 경사는 일본 나고야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탑승구 입구에서 기다리던 서 씨를 만나 주변 화장실에서 금괴를 넘겨줬다. 그러나 이들은 서 씨의 금괴 밀반출 첩보를 입수한 공항세관에 의해 현장에서 탑승 직전에 검거됐다. 공항세관은 서 씨를 조사해 유 경위와 김 경사가 연루된 사실을 밝혀냈다. 공항세관은 유 경위와 김 경사가 서 씨에게 받기로 한 정확한 뇌물 규모를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밝히지 않고 있다.

2004년과 2008년에도 경찰관들이 돈을 받고 금괴 밀수나 밀반출을 도운 혐의로 세관당국 등에 적발됐는데 경찰은 그때마다 큰 폭의 물갈이 인사를 단행했지만 범행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금괴는 운반하기 편하고, 시세 차익을 많이 챙길 수 있어 한탕을 노리는 밀수출업자들의 유혹이 끊이지 않는다. 경찰이 검색대에서 일반 출국자에 대한 보안경비업체의 검문검색을 감독하는 업무를 담당해 출입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이다. 서 씨도 한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금괴를 일본으로 밀수출하면 큰돈을 만질 수 있어 유 경위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항세관은 유 경위와 김 경사 외에 경찰과 세관 직원 등 서 씨의 금괴 밀반출을 도운 내부 관련자가 더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하고 있다. 경찰청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전국 공항경찰대에서 3년 이상 근무한 경찰관 전원을 교체하고 공항에서 3년 이상 근무하지 못하도록 ‘공항근무기간 총량제’도 도입하기로 했다. 또 문책 차원에서 윤대표 인천공항경찰대장(총경)을 25일자로 직위해제하고 후임으로 이희성 총경(경찰수사연수원 운영지원과장)을 내정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두 경찰관은 모두 파면 조치할 방침”이라며 “이번 사건에 경찰이 더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인천공항경찰대 소속 경찰관을 상대로 대대적인 감찰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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