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억 원짜리 수표로 교환해주세요." 지난해 7월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A은행 창구 직원은 15억 원짜리 수표 두 장을 손님들에게 받고 바로 감식에 들어갔다. 수표 용지는 진본이 틀림없었다. 수표번호에 발행은행과 발행인 날인까지, 의심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 1억5000만 원은 계좌로 넣고 1억 원짜리 수표 28장과 5000만 원짜리 수표 한 장을 받아든 일당은 유유히 은행을 빠져나갔다. 이들이 내민 수표는 가짜였다. 서울 동작구 사당동 A은행 지점 차장으로 있던 정모 씨(45)는 재직 중이던 지난해 1월 진본 수표용지 5장을 빼돌렸다. 수표금액이 적혀 있지 않은 원본 용지였다. 정 씨는 빼돌린 5장의 수표용지로 2만 원권 수표 5장을 발행한 것처럼 은행 장부에 기록했다. 이를 건네받은 김모 씨(46) 일당은 이 중 두 장의 수표 용지에 기재된 발행번호를 지우고 15억 원짜리 수표로 위조했다. 완벽한 위조를 위해서는 진짜 15억 원짜리 수표의 번호가 필요했다. 김 씨 등은 재력가 박모 씨(46)에게 "좋은 투자처가 있다"며 접근한 뒤 "투자자금이 있는지 확인이 필요하니 30억 원 수표 복사본을 보여달라"고 속여 위조수표를 만들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한창훈)는 7일 은행에서 수표용지를 빼돌린 뒤 발행번호와 금액을 변조하는 수법으로 위조수표를 만들어 30억 원을 챙긴 김 씨와 정 씨에게 각각 징역 4년에 벌금 5000만 원과 징역 2년에 벌금 2500만 원을 선고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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