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지 모으고 상금 털어 서민 돕는 공무원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1월 7일 03시 00분


서울시 직원 199명 봉사동호회
결손가정 아이들 동물원 초청
홀몸노인에 직접 연탄 배달도

서울시 공무원들이 5일 서울 관악구 청림동에서 불우이웃에게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7개월여 동안 시험 감독관 일당과 폐지 판 돈 등을 모아 연탄을 마련했다. 김재명 기자 ▶dongA.com에 동영상
서울시 공무원들이 5일 서울 관악구 청림동에서 불우이웃에게 연탄을 배달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7개월여 동안 시험 감독관 일당과 폐지 판 돈 등을 모아 연탄을 마련했다. 김재명 기자 ▶dongA.com에 동영상
2006년 여름, 매일같이 한 남자가 경기 과천시 서울동물원 사무실 건물 바깥에서 폐지를 모았다. 오전 6시 출근길마다 자가용으로 길거리에 버려진 상자를 주워 날랐다. 관람객들이 모두 빠져나간 썰렁한 동물원과 사육시설을 돌며 신문과 파지를 손으로 옮겼다. 당시 낙타 담당 사육사였던 송정석 씨(48)였다. 그는 폐지가 어른 키를 훌쩍 넘도록 쌓일 때마다 내다 팔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결손가정 아이들을 동물원으로 초청했다. 1000원 한 장도 귀한 아이들에게 학교에 가서 자랑해도 좋을 만큼 실컷 동물원 구경을 시켜줬다. 돌려보내기 전엔 꼭 큼지막한 돈가스를 한 접시씩 대접했다.

이렇게 시작된 작은 봉사는 올해 3월 말 ‘서울시 나눔과 봉사단(하트 리더)’이라는 조직을 탄생시켰다. 송 씨의 봉사활동 취지에 공감해 동참하고 싶어 하는 5급 이하 서울시 공무원 199명이 모여 봉사 동호회를 발족한 것. 191개 부서별로 봉사활동에 적극적인 대표자 한두 명씩이 동호회에 가입했다. 부서별로 모이다 보니 건축, 전기, 교통, 의료, 여성, 환경 등 분야별로 전문가 한 명씩을 저절로 확보할 수 있었다.

송 씨를 도와 폐지 수집을 돕는 동물원 직원도 있었고 주말 국가자격시험 감독관을 자청해 받은 일당 2만∼3만 원을 기부하는 기능직 공무원도 있었다. 봉사에 일가견이 있던 직원들은 각종 봉사상을 수상해 탄 상금까지 몽땅 내놨다. 그렇게 7개월여 만에 600만 원이 모였다. 이들은 이 돈으로 연탄을 사기로 했다. 살림이 어려워 연탄 살 돈을 마련하지 못하는 권모 할머니(63)의 사정을 들었던 것. 권 할머니는 10여 년 전 외환위기 때 사업이 망해 가족과 뿔뿔이 흩어진 채 네 평 남짓한 빈 교회 창고에서 홀로 살고 있다. 이달 초 갑자기 닥친 추위 때도 연탄을 때지 못해 감기를 앓아야 했다.

5일 오후 권 할머니가 사는 서울 관악구 청림동 골목. 빨간 목장갑과 일하기 편한 추리닝 차림의 회원 60여 명이 늘어서서 인간 띠를 만들었다. 평일이다 보니 참여한 회원들은 모두 개별적으로 하루 휴가를 내고 왔다. 난생처음 날라 보는 연탄이 행여나 한 장이라도 깨질까 던지지도 못하고 조심스레 손에서 손으로 주고받았다. 그렇게 30여 분 만에 할머니 방 문 앞에는 연탄 400장이 쌓였다. 봉사단 사람들에게 감기를 옮길까 봐 마스크를 쓴 할머니는 한참 동안 연탄을 어루만졌다.

이들은 이날 권 할머니를 비롯해 연탄을 때는 저소득층 10가구에 연탄 4000장을 전달했다. 연탄을 사고 남은 돈으로는 서울시 아동복지센터 아이들 35명을 서울동물원으로 초대하기로 했다. 송 씨가 홀로 해 오던 이 봉사는 하트 리더가 결성된 뒤 매주 목요일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6일에는 올 들어 16번째 특별한 동물원 관람이 펼쳐진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동아일보 김재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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