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서 17년간 장학금 받은 ‘박사 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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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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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훈장교로 복무1992년 인도유학중 포섭돼육군야전교범 등 기밀 넘겨○ 공작금 5만달러정당원 활동… 대통령 표창국회의원 출마 지령받기도

해외유학 시절 만난 북한 공작원에게 20년 가까이 군사기밀 등 각종 정보를 넘기는 등 간첩행위를 해 온 현직 대학강사가 적발됐다. 수원지검 공안부(부장 변창훈)는 1992년 유학 중이던 인도에서 북한 측 대남공작원에게 포섭돼 올해 초까지 기밀정보를 북한에 넘겨주고 거액의 공작금을 받은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로 경기지역 A대학 강사 이모 씨(37)를 구속기소했다고 29일 밝혔다. 검찰 조사 결과 이 씨는 북한으로부터 받은 공작금 5만 달러로 학비를 충당하며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그는 특히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자문위원, 통일교육원 교육위원, 정당 대의원, 대학강사 등 활발한 사회생활을 통해 ‘정계 진출’까지 계획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 평범한 유학생이 간첩으로

검찰에 따르면 이 씨는 1990년 대전지역 모 고교를 졸업했다. 평소 인도 철학에 심취했던 그는 국내 대학 진학 대신 인도행을 선택했다. 1991년 인도 델리대 람자스칼리지 정치학과에 입학한 이 씨는 같은 해 10월 북한의 대남공작기구인 ‘35호실’ 소속 공작원 이진우(56)를 만났다. 35호실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소속으로 ‘아웅산 묘소 폭파사건’과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등을 주도한 곳. 유학생활의 외로움과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던 이 씨는 곧바로 이진우에게 포섭됐다.

이 씨는 1993년과 1994년 두 차례에 걸쳐 밀입북해 조선노동당에 가입했다. 1995년 귀국한 뒤에는 수시로 중국, 캄보디아, 싱가포르, 태국 등지에서 이진우를 만나 군사기밀과 국가정보원 및 민주평통 자료 등을 건넸다. 그 대가로 공작금 5만600달러를 받았다.

이 씨가 넘긴 자료 중에는 2001년 육군 모 부대에서 정훈장교로 일하던 중 빼낸 육군 최상위 야전교범, 미 육군 최상위 전투수행교범 등 군 관련 자료 507종의 내용이 담긴 CD가 들어 있다. 또 2006년부터 2007년 사이에는 민주평통 자문위원 신분으로 참석한 안보정세설명회 녹음파일과 수원 공군비행장, 송탄 미군비행장, 해병대사령부 등 국가 중요시설의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자료 등도 포함됐다. 특히 40여 개국에 파견된 군 장성들의 이름과 계급, 병과 등이 수록된 주외무관(駐外武官) 명단을 넘겨주기 위해 보관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씨는 주로 외국에 서버를 둔 e메일로 북한 공작원과 연락하고 주요 정보를 실시간으로 건네려고 웹하드까지 이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씨는 각종 정보를 넘겨준 공로로 2003년 싱가포르에서 북한 지도원으로부터 노력훈장과 훈장증을 받았다.

○ ‘정계 진출’ 지령까지

북한이 지급한 공작금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 씨는 민주평통 자문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모 정당 대의원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표창까지 받고 시민사회단체 및 지역신문사와 함께 일하는 등 지역사회에서 ‘오피니언 리더’로 인정받았다. 급기야 북한 공작원은 올 2월 “국회의원이나 시장이 되라”는 ‘정계 진출’ 지령까지 내렸다. 그러나 이 씨의 행적을 수상히 여기고 내사를 벌여 온 검찰과 국정원에 의해 지난달 긴급 체포됐다.

수원=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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