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해체 ‘전남경찰청 악대’ 폐교 앞둔 시골분교서 고별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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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0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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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폭 가을동화 같은 라스트콘서트
꼬마 학생 6명 앞에 두고
‘아기염소’ 등 동요-팝송 연주
관객은 ‘마법의 성’ 불러 화답

전남지방경찰청 악대가 28일 전남 무안군 일로초등학교 죽산분교를 찾아 마지막 공연을 했다. 지방경찰청 악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던 전남경찰청 악대는 이날 고별무대에서 역시 내년 2월 문을 닫는 죽산분교 아이들에게 감동의 하모니를 선사했다. 무안=박영철 기자
전남지방경찰청 악대가 28일 전남 무안군 일로초등학교 죽산분교를 찾아 마지막 공연을 했다. 지방경찰청 악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던 전남경찰청 악대는 이날 고별무대에서 역시 내년 2월 문을 닫는 죽산분교 아이들에게 감동의 하모니를 선사했다. 무안=박영철 기자
“야! 경찰 아저씨들 왔다.” 제복을 입은 의경들이 교문에 들어서자 2학년 정형근 군(9)이 갑자기 호들갑을 떨었다. 정 군은 쌍둥이 동생과 옆 교실로 달려가 형과 누나들을 찾았다. 수업을 받던 아이들이 교실 창가로 몰려가 얼굴을 내밀었다. “선생님 이제 음악회 하는 거예요.” 5학년 박연희 양(12)은 믿기지 않는 표정이었다. 담임교사인 김용석 분교장(59)이 “빨리 가서 인사해야지”라고 하자 아이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28일 오후 전남 무안군 일로초등학교 죽산분교. 학생 6명에 교사가 3명인 시골 미니학교가 음악회로 분주했다. 정 군 형제는 낑낑대며 의자를 들고 나왔고, 형과 언니들은 운동장 낙엽을 치우느라 바빴다. 운동장 한쪽 전나무 아래에 공연장이 만들어졌다. 객석이라고 해봤자 딱딱한 나무 의자 6개가 전부.

음악회는 따스한 가을햇살을 맞으며 시작됐다. 첫 곡은 팝송 ‘필 소 굿(Feel So Good)’. 아이들은 생전 처음 보는 관악기와 타악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경쾌한 리듬에 귀를 쫑긋 세우며 ‘그들만의 음악회’를 마음껏 즐겼다. ‘새싹들이다’ ‘아기염소’ 등 귀에 익은 동요가 연주되자 아이들은 박수를 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분교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준 이들은 전남지방경찰청 소속 악대원들. 의경 27명으로 구성된 악대에 이날 무대는 아주 특별했다. 1991년 창단돼 18년 동안 곳곳을 다니며 국민과 경찰의 가교역할을 했던 악대가 다음 달 해체되기 때문이다. 타악기와 전자기타를 다루는 악대원 5명이 다음 달 전역하지만 의경 감축 방침에 따라 신임 의경이 배치되지 않는다.

악대원들은 뜻 깊은 고별 무대를 고민하다 폐교를 앞둔 ‘분교 음악회’를 떠올렸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자신들의 모습과 비슷한 초등학교에서 공연을 갖기 위해 대상 학교를 물색했다. 몇몇 학교를 검토하다 죽산분교가 내년 2월 말 폐교된다는 걸 알았다. 드럼을 연주하는 김영진 수경(24)은 “어머니가 없거나 할머니 손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많다는 얘기를 듣고 학교를 찾아 희망의 하모니를 들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날 음악회는 악대원뿐 아니라 아이들도 주인공이었다. 악대 연주가 끝나자 아이들은 ‘마법의 성’을 부르며 화답했다. 정 군 형제가 가사를 놓치고 3학년 김예지 양(10)이 음정을 잘 맞추지 못했지만 악대원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김 분교장은 “악대 공연 소식이 알려진 뒤 아이들이 달력에 날짜를 표시해놓고 음악회를 기다렸다”며 “학예발표회 때 부를 노래를 한번 해보고 싶다며 수업이 끝난 뒤 모여 열심히 연습했다”고 전했다.

4학년 김호성 군(11)은 음악회가 끝난 뒤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다음 달 전역하는 허남진 수경(23)이 평소 아끼던 기타를 건넨 것. 허 수경은 “호성이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해서 주는 거야”라며 호성이를 꼭 껴안았다. 호성이의 누나인 6학년 김하은 양(13)은 분교를 찾아준 악대원들에게 감사의 편지를 낭독했다.

“경찰 아저씨들이 우리 학교에 오셔서 연주를 하신다니 너무 많이 설렜어요. 우리 학교처럼 악대도 없어진다니 많이 아쉽지만 또 다른 시작이라고 믿습니다. 큰 학교로 옮겨 많은 친구들을 사귀고 더 큰 꿈을 향해 열심히 노력할게요. 경찰 아저씨도 다른 일을 맡아 열심히 나라를 위해 노력해 주세요. 아저씨들을 위해서 매일 응원할게요.”

무안=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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