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요리에 푸~욱 빠진 아이들

  • 입력 2009년 9월 4일 02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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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권상원 군(서울 중구 신당동)은 요즘 요리하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지난주에는 참외를 반으로 자른 뒤 그 위에 직사각형으로 다듬은 키위를 올리고 다시 체리와 포도를 예쁘게 장식한 ‘작품’을 들고 집에 왔다. 1시간 동안 먹음직스러운 ‘퓨전 과일 세트’를 기획하고 과일을 깎고 자르고 이쑤시개 등으로 고정시키는 것 모두 아직 초등학교에도 다니지 않는 상원이가 해냈다. 상원이는 어린이를 위한 전용 요리학원을 8개월째 다니고 있다. 요리가 어린이들의 창의력과 다양한 감각, 집중력 등을 향상시키는 도구로 떠오르고 있다.

○ “ABC 가르치느니 요리를 즐기게 하는 편이 훨씬 낫다”

상원이 어머니 박민주 씨(37)는 “많은 엄마들이 상원이 또래의 아이들을 영어 유치원에 보내고 있지만 상원이의 경우 요리를 즐기도록 하는 편이 훨씬 낫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상원이가 아주 어릴 적부터 요리에 관심이 컸기 때문. 박 씨는 “어떤 요리를 어떤 방법으로 만들지 고민하는 과정에서 상상력과 창의력이, 자신이 만든 요리를 설명하면서 표현력이, 음식 재료를 직접 다루면서 손 끝 감각과 손놀림이 좋아졌다”며 “심지어 당근이나 파 등 채소를 싫어하는 편식도 사라졌다”며 만족해했다. 해외 유학파 영어 강사이기도 한 박 씨는 “결국 엄마들 판단의 몫”이라며 “어린이들의 요리 활동을 단순히 ‘음식 만드는 과정’ 정도로 평가절하할 일은 아니다”고 조언했다.

다른 아이들이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을 했다는 자부심과 자신감도 빼 놓을 수 없는 긍정적 효과다. 상원이는 친구들이 종종 먹는 쿠키나 케이크, 샌드위치, 피자 등을 보면 이것을 어떻게 만드는지 또 어떻게 하면 더 맛있게 만들 수 있는지 등을 친구들에게 설명해 준다. 그러면서 친구들의 주목도 받는 것. 그러다 보니 상원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다.

○ 오빠 이어 동생까지 ‘요리 남매’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있는 어린이 요리전문학원 ‘쿡플러스’에 1년째 다니고 있는 권민지 양(5·서울 성동구 행당동)은 초등학교 6학년 오빠 성욱 군(12)과 함께 요리를 배우고 있다. 학원에서는 ‘요리 남매’로 통할 정도. 어머니 한혜란 씨(43)는 “성욱이는 3년째 요리를 배우고 있는데 아이에게서 좋은 점들이 많이 보여 동생도 함께 다니게 하고 있다”고 했다. 한 씨가 강조하는 어린이 요리 교육의 효과는 집중력 향상이다.

특히 불과 다섯 살에 불과한 민지가 요리는 물론이고 다른 활동에서도 1시간 정도 몰입하고 있다. 또 요리라는 공통된 화제를 통해 가족 간 대화가 많아지고 유대감이 높아지는 것도 장점이다. 민지는 매주 학원에서 만든 요리를 집으로 가져와 엄마와 함께 시식하고 평가를 받는 것을 즐긴다. 엄마와 함께 새로운 요리를 고민하기도 한다.

자녀들에게 요리를 배우도록 하는 박 씨와 한 씨 모두 어린이 요리 교육에 대해 “효과 대비 비용이 매우 저렴하다”고 했다. 상원 군과 민지 양이 다니는 학원의 경우 주 1회 1시간 수업에 월 8만 원. 게다가 1개 반이 5∼7명 정도의 소규모로 구성돼 안심하고 아이들을 맡길 수도 있다.

박재남 쿡플러스 원장은 “요리활동에는 재료를 계량하고 자르고 나누는 수 개념과, 색을 조화롭게 배치해야 하는 미적 감각, 맛을 언어로 표현해 내는 언어 능력 등 교육적인 요소가 많이 녹아 있다”며 “최근 엄마들의 관심이 크게 높아지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글=김기용 기자 kky@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조물조물 음식 만들 궁리에 창의력 커지고…
꼬물꼬물 재료 더하고 빼며 논리력 자라고…

이제 겨우 대여섯 살 난 아이들이 요리한답시고 음식재료를 조물조물거리면 ‘귀한 먹을거리로 장난친다’고 어르신들로부터 호통을 들을 법하다. 하지만 요리를 단순히 먹을 음식을 만드는 행위로 한정하지 않고 아이들의 정서를 발달시키고 교육적 효과까지 거둘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오히려 칭찬받아야 할 일이다. 이들은 장차 어린 시절 낭비했던 음식의 수천수만 배에 이르는 경제·사회·문화적 가치를 생산해 낼지도 모를 일이니까.

○ 창의력 향상부터 편식 해결까지

쿡플러스 조은희 실장은 “창의력과 상상력, 문제해결력, 논리적 사고력 등 어린아이들이 갖추면 좋은 모든 요소들이 요리하는 과정에 녹아 있다고 보면 된다”며 “다만 교육적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아이들이 1년 이상 꾸준히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요리를 배우는 아이들은 먼저 문제해결력이 향상된다. 요리의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치면서 발생될 수 있는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료를 활용해 어떤 요리를 만들지 고민하면서 상상력과 창의력이 발달하는 것은 기본이고, 집중력이 길지 않은 아이들이 요리를 통해 몰입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덤이다. 전문가들은 “직접적으로 숫자를 다루는 것은 아니지만 재료와 재료가 더해지며 재료가 변화되는 과학적 현상과 수학적 개념 등도 이해하게 된다”고 덧붙인다.

자기 스스로 만든 요리를 먹으면서 건강한 식습관 형성과 편식 습관 해결에도 도움이 된다. 게다가 손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두뇌 발달에도 좋으며 요리를 부모와 함께 시식하며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유대감을 높일 수 있다.

이 같은 효과 때문에 현대백화점 목동점의 경우 유아놀이방 ‘키즈스타’에서는 놀이방의 감초인 ‘볼풀’이 없어지고 대신 그 자리에 어린이 요리교실이 들어섰다. 다른 지역은 아직까지 볼풀 놀이방이 일반적이지만 교육열이 높은 목동의 특징에 맞춰 변신한 것이다.

‘키즈스타’에서는 매일 하루 6번씩 엄마와 3∼9세 자녀가 함께 요리교실에 참여할 수 있다. 요리 주제는 핫도그, 샐러드, 쿠키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류가 많으며 매주 새롭게 선정된다.

○ 어린이 전용 요리강좌 확대 추세

아직 국내에는 어린이 전문 요리학원이나 강좌가 많지 않지만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먼저 숙명여대 한국음식연구원이 운영하는 어린이요리교실이 대표적이다. 교육과 오락을 접목한 요리교실로 동화로 배우는 대표적인 요리교실. 미술과 음악을 접목시킨 푸드 아트 클래식 등 어린이 요리활동을 다양하게 구분해 연령별 발달 단계에 맞춰 수업을 진행한다. 수강료는 각 수업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며 주 1회씩 월 12만∼18만 원이다.

‘건강하게, 즐겁게, 더불어 함께’라는 교육이념으로 출발한 쿡플러스는 어린이 전문 요리아카데미다. 수업은 주 1회로 월∼금요일 가운데 1시간을 선택해 수강하면 된다. 1개 팀은 5명 내외를 정원으로 한다. 방학을 이용하는 특강은 6세부터 초등학생까지 참여할 수 있다. 주 1회 기준의 정규 요리교실 수강료는 8만∼14만 원이다.

린나이코리아는 엄마와 함께하는 어린이 요리교실을 매달 개최하고 있다. 2가지 요리로 구성된 메뉴를 제안하며, 참가 신청은 ‘이쁜 엄마가 되자’, ‘가족극장해밀’, ‘아이랑 놀자’, ‘맘스쿨’ 등의 온라인 카페를 통해 할 수 있다. 1회 참가비는 재료비를 포함해 1만7000원. 온 가족이 참여해 3가지 요리를 만드는 가족요리반 수업의 경우 3만8000원이며 수업은 매주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진행된다. 한국하인즈도 요리사 조우현 씨와 함께 진행하는 ‘레시피 교류’ 및 ‘특별 어린이요리교실’을 10월쯤 열 계획이다.

백화점 문화센터의 요리교실도 인기를 끌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가을학기 문화센터 강좌 가운데 ‘엄마랑 아가랑 요리교실’이 조기 마감된 상태다. 30개월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 자녀를 동반한 엄마를 위한 강좌들로 △오감발달 요리교실 △아기자기한 케이크 만들기 △엄마와 함께 만들어 보는 케이크&쿠키 △엄마와 함께하는 달콤한 간식 만들기 △쿠킹&스토리텔링 등으로 구성됐다. 특히 이번 가을학기부터는 아빠와 함께하는 ‘주말 아빠와 함께하는 신나는 요리교실’도 신설됐다.

롯데백화점도 요리 강좌 중간에 영어 스토리텔링을 진행하는 ‘Banana cooking English’와 충무할매김밥, 오믈렛 등 부모와 아이들이 쉽게 배울 수 있는 음식을 중심으로 ‘왕초보도 쉽게 할 수 있어요’ 등의 요리 강좌를 마련했다.

현대백화점 문화센터 백성혜 차장은 “요리 실습을 통해 아이들의 인지능력과 신체조절능력이 배양되는 효과가 높다고 알려져 있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쿠키, 케이크 등을 함께 만드는 과정에서 자녀와 친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어 신세대 주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 요리 활동 후를 표현하도록 해야

어린이 요리활동에도 유의할 점은 있다. 우선 요리를 할 때 반드시 아이가 주도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엄마는 보조적인 역할이어야 한다. 특히 아이가 지루해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즐겁게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많은 대화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며, 다소 엉뚱하더라도 아이의 생각을 격려해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 아이가 스스로 이해하며 할 수 있는 요리를 해야 한다. 너무 어려운 요리를 선택하면 요리활동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간단한 샌드위치나 피자 등은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는 요리다.

요리활동 과정에서 느낌과 그 결과를 표현하도록 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글씨를 잘 모르는 아이들은 그림으로 하거나 엄마와 대화를 통해 하는 방법도 있다. 이 같은 ‘요리 후 과정’은 어린아이들이 얻게 되는 요리의 긍정적 효과를 배가시키고 오래 유지시켜 준다.

한편 어린아이들에게 요리를 배우도록 할 때 날카로운 도구들로 인한 안전사고를 걱정하는 부모들이 많다. 하지만 어린이 전용 요리강좌에서는 모두 어린이 전용 도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사고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어린이 전용 칼은 피부에 조금 닿아도 베이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으며 칼끝은 뾰족하지 않고 둥글게 처리됐다. 통조림, 병 등을 따는 오프너도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적은 힘으로도 쉽게 열 수 있도록 하는 제품이 있다. 특히 어린이 전용 주방도구들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그려져 있거나 야채 모양 가위 등 아이들의 눈길을 끌도록 만들어져 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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