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 이긴 ‘765Km 자전거 여행’

  • 입력 2009년 8월 19일 21시 26분


자전거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스물세 살 청년 황웅구 씨(오른쪽에서 네 번째)의 표정이 해맑다. 그는 3세 때 자폐성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자전거를 타며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황 씨는 5일부터 15일까지 99명의 대학생들과 함께 4대강 765km를 자전거로 순회하는 ‘대한민국 그린물길 캠프’를 함께했다. 사진 제공 대한민국 그린물길캠프
자전거로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스물세 살 청년 황웅구 씨(오른쪽에서 네 번째)의 표정이 해맑다. 그는 3세 때 자폐성 지적장애 판정을 받았지만 자전거를 타며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황 씨는 5일부터 15일까지 99명의 대학생들과 함께 4대강 765km를 자전거로 순회하는 ‘대한민국 그린물길 캠프’를 함께했다. 사진 제공 대한민국 그린물길캠프
15일 그린물길캠프를 완주한 황웅구 씨가 서울숲에서 아버지 황금주 씨(왼쪽에서 세 번째)와 어깨동무를 한 채 깜찍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제공 대한민국 그린물길캠프
15일 그린물길캠프를 완주한 황웅구 씨가 서울숲에서 아버지 황금주 씨(왼쪽에서 세 번째)와 어깨동무를 한 채 깜찍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제공 대한민국 그린물길캠프
"보고 싶다", "만나고 싶다". 누군가는 수백 번 수천 번 했을 말.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20여 년 동안 한 번도 하지 못한 말이기도 하다.

'자폐성 지적 장애.' 아직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자폐는 많은 이의 삶을 옭아맨다. 청년 황웅구 씨(23)도 그랬다. 3세 때 자폐 판정을 받았다. 그 후 세상과 담을 쌓기 시작했다. 좋아도 좋다고,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

황 씨는 유독 동그란 바퀴는 좋아했다. 거리를 지날 때 자동차나 자전거에 달린 바퀴를 한참을 바라보곤 했다. 6세 때 아버지를 졸라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자전거를 탈 때만큼은 즐거웠다. 집 근처 논길을 달리다 흙더미에 처박히기를 수차례. 좁은 시골길에서 자동차와 마주쳐 위험한 순간을 맞은 적도 있었다. 그의 부모는 당장이라도 자전거를 내다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들이 매달리는 자전거를 뺏을 수는 없었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며 위험에 대처하는 인지 능력도 점점 나아졌다.

황 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자전거에 더 강한 애착을 보였다. 혼자 지도를 들고 하루에 100~150km씩 페달을 밟았다. 경기 용인 집에서 여주까지 150km 거리를 다녀오는 게 다반사였다. 아버지 황금주 씨(58)는 마음이 놓이질 않아 몰래 뒤를 따라가 보기도 했다. 종종 넘어지곤 했지만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자전거를 탈 때 가장 자유로이 숨 쉰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황 씨는 4년 넘게 하루에 100km 이상 자전거를 탔다. 그리고 5일부터 15일까지 부산에서 서울까지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영산강 금강 한강 등 4대 강을 탐방하는 '대한민국 그린물길 캠프'에 참가했다. 10박 11일 동안 99명의 대학생과 함께 765km를 달렸다. 그에게 하루 70~80km 남짓한 거리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특별하게 보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불편했다. 주변 친구들이 말을 걸어도 묵묵부답이었다. 휴식 시간에도 혼자 우두커니 서 있곤 했다.

하지만 하루 이틀 지나면서 그는 달라졌다. 많은 사람들은 뙤약볕 밑에서 하루 종일 자전거를 타도 피곤한 내색 않는 그를 신기해했다. 황 씨도 그를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 아닌 놀라운 체력을 가진 친구로 생각하는 동료들에게 조금씩 마음을 열었다. 힘들어하는 친구의 어깨를 주물러주거나 고장 난 자전거를 함께 고쳤다. 활력을 돋우는 분위기 메이커도 그의 몫이었다. 황 씨는 결국 무사히 완주를 했다. 우수 대원 표창까지 받았다. 그리고 소중한 친구들을 사귀었다.

캠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황 씨는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건 처음"이라며 기뻐했다. 세상과 담을 쌓았던 아들이 자전거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세상과 소통하게 된 것이다.

황 씨는 앞으로 전문적인 자전거 훈련을 받을 계획이다. 마라톤의 배형진, 수영의 김진호 씨처럼 많은 이에게 희망을 주는 청년. 앞으로 그가 가야 할 길이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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