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돈 건넸다는 진술 모두 사실”

  • 입력 2009년 6월 24일 02시 59분


법정서 “기업경영 기회 달라”
변호인 “정상문 3억 요구해”

23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425호 법정. 정관계 유력인사들에게 금품 로비를 한 혐의(뇌물공여)로 추가 기소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구속 중)이 모두진술을 하기 위해 변호인의 부축을 받으며 피고인석에서 일어났다. 박 전 회장은 자필로 꾹꾹 눌러 쓴 편지지 한 장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목이 멘 듯 떨리는 목소리로 띄엄띄엄 읽어 내려 가면서 금품을 건넨 사실을 순순히 인정했다.

“평소 친분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저 돈을 해 준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수사와 재판을 받으며 잘못을 반성했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돈을 건넨 것을) 모두 사실대로 진술한 것입니다.”

박 전 회장은 사업에 강한 애착을 내비쳤다. 그는 “태광실업은 제 모든 것을 바친 회사”라며 “앞으로 기업 경영을 통해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도록 제발 기회를 주시기 바란다”며 진술을 마쳤다. 박 전 회장이 1980년 설립한 태광실업은 중국, 베트남 공장에서 전 세계 ‘나이키’ 신발 물량(2억5000만 켤레)의 약 7%인 연간 1700만 켤레를 생산하고 있으며, 지난해 4500억 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박 전 회장 측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잘못을 모두 털고 가는 대신 자신이 일군 기업만은 살려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혐의를 모두 자백한 것 같다”고 전했다.

변호인은 “박 전 회장이 친분관계 때문에 돈을 건넨 사실은 인정하지만 사업이나 인사 청탁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라며 “정상문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에게 준 3억 원도 정 전 비서관이 먼저 청와대 행사 등에 쓸 돈이 필요하다고 해서 건넨 것”이라고 밝혔다.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정 전 비서관은 “먼저 돈을 달라고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어 양측의 진실공방이 예상된다. 변호인은 “각계각층 인사들과 직원까지 합쳐 4만여 명이 박 전 회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며 “박 전 회장이 목과 허리의 디스크 증세가 악화됐고 협심증과 관련해 협착이 재발해 조속히 수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다음 달 7일 결심 공판을 열어 심리를 마무리한 뒤 이르면 다음 달 안에 박 전 회장에 대한 1심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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