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생 줄고 경쟁력 떨어지고…” 대학 구조조정 불 붙었다

  • 입력 2009년 6월 24일 02시 59분


학제 개편에 따라 신설된 바이오시스템대에서 연구 중인 동국대 교수와 학생. 동국대는 유사 학문 간 통합을 유도하고 일부 학과는 커리큘럼 70%를 바꾸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최순열 동국대 학사부총장은 “현재 대학 사회에서 구조조정은 ‘백조의 수영’이다. 겉으론 평온해 보여도 속으로는 다들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동국대
학제 개편에 따라 신설된 바이오시스템대에서 연구 중인 동국대 교수와 학생. 동국대는 유사 학문 간 통합을 유도하고 일부 학과는 커리큘럼 70%를 바꾸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최순열 동국대 학사부총장은 “현재 대학 사회에서 구조조정은 ‘백조의 수영’이다. 겉으론 평온해 보여도 속으로는 다들 살아남기 위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동국대
“부실 사립대 퇴출”
교육부, 11월 명단발표

비인기학과 정원 줄여
경쟁력 높은 학과 배분

서울대 연대 한양대 등
학부제서 학과제 전환
학과 통폐합-경쟁 유도

“전 세계에서 불문과가 제일 많은 나라는 프랑스, 그 다음이 우리나라랍니다. 과연 우리 사회에 불문과 졸업생이 그렇게 많이 필요할까요?” 대학 구조조정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의 말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지난해 발표한 평가자료에 따르면 한국 대학의 교육 품질은 조사 대상 60개국 중 59위였다. 대학 진학률은 최고 수준이지만 사회적 수요에 맞는 인재 공급 구조를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 순위를 낮춘 주요 이유였다. 방만한 대학 운영이 ‘학력 인플레이션’만 유발한다는 지적이다.

학령(學齡)인구가 줄고 있는 것도 각 대학이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전국 198개 4년제 대학 중 신입생 충원율이 70%에 미치지 못하는 대학은 20여 곳이나 된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3년 이미 대학 정원이 전체 고교 졸업생 수를 넘은 것으로 보고 있다. 교과부는 11월 부실 사립대학 중 퇴출 대상 대학 명단을 발표하는 것을 시작으로 과감한 사립대 구조조정에 돌입한다는 방침이다. 국공립대 구조조정은 이미 한창 진행 중이다.

대학에서 구조조정에 접근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갈래. 유사 학문을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유도하거나 기존 학부제를 해체하고 학과제로 전환해 학과 간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 학과 중심에서 학문 중심으로 시너지 유발

동국대는 사회적 수요가 떨어지는 학과를 정리하고 연관성이 높은 학과 간 커리큘럼을 연계해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학제 개편을 시작했다. 2007년 취임한 오영교 동국대 총장은 “사회는 급변하는데 대학에는 1960∼1970년대 만든 학과가 바뀌지 않고 있다. 정원이 30명인 학과에 3, 4학년이 되면 7, 8명만 남는 현실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구조조정을 독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동국대는 지난해부터 매년 학과 평가를 실시해 하위 15% 학과의 정원을 감축하고 그 정원을 정책적 육성이 필요한 학과에 배분하는 ‘상시 입학 정원 관리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최순열 동국대 학사부총장은 “자신들의 학과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불편한 진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지금은 각 학과가 자발적으로 학과 발전 방향을 만들어 학제개편에 적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국대는 또 기존 생명과학대를 바이오시스템대로 재편하면서 교수들의 희망에 따라 소속을 결정하도록 했다. 기계공학과도 기계로봇에너지공학과로 이름을 바꾸면서 커리큘럼의 80%를 바꿨다. 학생들에게 전공 선택의 폭을 넓혀 사회적 수요에 탄력적으로 적응하기 위해서다.

중앙대도 ‘학문 단위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다. 중앙대는 최근 19개 단과대학, 17개 대학원 중 교과 내용이 중복되는 학과, 비인기학과를 정리하겠다는 기본 방침을 세웠다. 국립대도 예외가 아니다. 충남대는 등록금 수입과 취업률 같은 평가 지표가 낮게 나온 학과의 정원을 감축하는 ‘정원 탄력 운영제’를 내년부터 도입하기로 했다. 순천대는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연대를 없애고, 자연대 교수들을 공대 기초학문연구 분야로 재배치했다.

○ 학과로 먼저 풀어주고 경쟁 유도

연세대를 시작으로 서울대에 이어 건국대, 경희대, 한국외국어대, 한양대 등은 학부제를 버리고 학과제로 돌아가기로 했다. 학과제 모집은 인기 학과와 비인기 학과 간 차이를 뚜렷하게 해 학과 구조조정의 명분을 제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이미 일부 지방 사립대에서는 경쟁력을 갖춘 학과는 학과제로 전환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학과는 통폐합을 추진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대구 지역의 한 대학 입학처장은 “학부제 그늘 아래 신입생을 채워 온 학과들을 이대로 유지해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고 말했다. 건국대를 비롯한 수도권 대학들은 학과 단위로 신입생을 모집하는 학과의 경우 매년 취업률, 재학률 등을 평가해 10% 내에서 정원을 줄이거나 늘린다는 방침이다.

○ 다양한 이해관계 조정 필요

구조조정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야만 한다. 동국대 학제 개편을 담당한 홍성조 학사지원본부장은 “자신의 학과가 없어진다는 생각 대신 ‘교수는 가르칠 수 있는 학생 폭이 넓어진다. 학생은 배울 수 있는 분야가 늘어난다’고 생각하는 풍토가 자리 잡아야 구조조정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큰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많다. 교육 전문가들은 “대학 구조조정이 완성되려면 스스로 문을 닫겠다는 대학이 나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아직까지 경쟁력 없는 대학이 퇴출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에 대해 지방대 관계자들은 ‘무조건 퇴출’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지방 사립대 총장은 “퇴출도 좋지만 특성화된 분야에서 ‘작지만 강한 대학’으로 키우는 것도 구조조정의 한 방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소 대학이 연합체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다.

권대봉 한국직업능력개발원장은 “대학 내 구조조정뿐 아니라 각 대학이 독립성을 유지한 채로 공동 커리큘럼을 개발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다”며 “특히 지방에 있는 대학들은 지역 사회 요구에 귀를 기울여야 성공적인 구조조정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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