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 개그’ 결론난 BBK 의혹

  • 입력 2009년 5월 29일 02시 57분


大法 “김경준 주가조작-허위사실 유포 모두 유죄” 징역 8년 확정

2007년 대선 혼탁 주범… 정치권 책임론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흠집 내기 위해 ‘BBK 의혹’을 제기한 김경준 씨(42·수감 중·사진)가 대법원에서 징역 8년을 최종 선고받았다. 대법원1부(주심 김영란 대법관)는 28일 319억여 원의 회사 돈을 횡령하고 이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구속 기소된 김 씨에게 징역 8년과 100억 원의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김 씨는 2001년 7∼10월 옵셔널벤처스 자금 319억 원을 횡령하고 2001년 주가조작으로 주식시세를 조종했으며, 자신의 횡령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2007년 11월 ‘회사의 실제 주인은 이 후보’라는 내용의 이면계약서를 위조하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 결국은 돈 노린 경제범죄

법원은 김 씨가 처음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워 옵셔널벤처스의 주가를 조작하고 회사 돈을 횡령했다고 판단했다. 김 씨가 외국계 페이퍼컴퍼니를 세운 뒤 외국자본이 옵셔널벤처스의 유상증자에 참여할 것처럼 허위공시를 내 주가를 조작했으며, 이렇게 모은 회사 돈 319억 원을 자신이 운영하던 BBK투자자문 투자자들에 대한 투자금 반환 등의 명목으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또 자금세탁을 위해 가명계좌를 사용하고 죽은 동생의 여권으로 해외를 드나드는 등 범죄를 철저히 감추려 한 사실도 인정했다. 법원은 옵셔널벤처스가 김 씨의 범행 직후 상장 폐지돼 소액주주들이 큰 피해를 본 점이나 김 씨가 빼돌린 회사 돈으로 미국에서 호화생활을 한 점 등을 감안할 때 무거운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보았다.

법원은 김 씨가 2007년 11월 대선을 앞두고 검찰수사를 받으면서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라며 위조 이면계약서를 수사팀에 제출하는 등 허위사실을 유포한 데 대해서도 책임을 물었다. 정책과 공약을 토대로 후보자를 검증해야 할 선거가 김 씨의 근거 없는 거짓주장과 이에 동조한 정치권의 의혹 폭로로 혼탁해졌다는 것이다.

○ “대한민국을 무대로 한 거짓 연극”

당초 김 씨의 범행은 돈을 노린 흔한 경제범죄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7년 6월 한나라당내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두고 박근혜 전 대표 측이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 후보이며 ㈜다스와 서울 강남구 도곡동 땅도 이 후보의 차명재산”이라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정치문제로 비화됐다. 미국 연방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김 씨는 이 같은 분위기에 편승해 한국 송환을 자청했다.

김 씨는 같은 해 11월 귀국하면서 “BBK는 100% 이 후보의 소유”라고 주장하며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본질을 흐리려 했다. 검찰은 대통령선거를 2주일 앞둔 같은 해 12월 5일 이 후보의 주가조작 공모와 BBK 및 ㈜다스 차명 소유 의혹은 모두 무혐의이며 김 씨가 이 후보의 BBK 소유 사실을 입증할 결정적 증거라고 제시했던 이면계약서도 위조문서라고 발표했다.

김 씨는 이에 반발해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회유와 협박을 했다”고 주장했고 정치권은 이를 빌미로 특별검사법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후 38일간의 특검 수사를 통해 분명해진 것은 주가조작과 횡령사건이 김 씨와 김 씨의 누나 에리카 김, 아내 이보라 씨가 함께한 ‘가족 범죄’라는 것뿐이었다.

김 씨 사건을 맡았던 1심 재판부는 이 같은 일련의 과정에 대해 “대한민국을 무대로 한 거짓 연극으로 ‘태산을 요동치게 하고 겨우 쥐 한 마리 잡았다(泰山鳴動 鼠一匹)’”고 규정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동아닷컴 뉴스콘텐츠팀

▼금감위-검찰 안믿고 의혹만 터뜨려

음해에 집착한 정치권▼

BBK 사건은 2007년 대선을 가장 뜨겁게 달궜던 사건이다. BBK 사건은 그해 8월 치러진 한나라당 경선을 앞두고 박근혜 후보 측이 “이명박 후보가 BBK의 실소유주”라고 기자회견을 통해 주장하면서 촉발됐다. 열린우리당 박영선 의원도 그해 6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이 후보의 주가조작 연루설을 추가로 제기했다. 윤증현 당시 금융감독위원장은 “자체 조사 결과 이 후보의 주가조작 혐의가 없다”고 밝혔지만 박 전 대표 측과 야당은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이 후보 측이 그해 7월 박 전 대표 측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본격적인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이후 이 후보 측은 고소를 취하했지만 검찰 수사는 계속됐고 BBK 주가조작 사건의 주범인 김경준 씨가 그해 11월 국내로 송환되면서 BBK 공방은 극에 달했다.

대선 승리 가능성이 낮았던 대통합민주신당(민주당의 전신)은 이 사건을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정봉주 의원 등은 각종 자료들을 제시하며 이 후보에 대한 연루 의혹을 증폭시켰다.

검찰이 대선 직전인 12월 5일 이 후보는 BBK 사건과 무관하다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자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정성진 법무부 장관에게 재수사 지휘권 발동을 지시했다. 그러나 다음 날 이 후보는 ‘특검 수용’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대통합민주신당은 국회에서 ‘BBK특검법’을 처리하며 이 후보의 BBK 연루 의혹을 거듭 이슈화하려 했지만 판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김씨측 주장 여과없이 전달 혼란만

일부 언론 엇나간 보도▼

KBS, MBC와 한겨레 등은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를 검증한다며 “BBK 주가 조작 및 횡령 사건에 이 후보가 연관이 있다”는 김경준 씨와 당시 범여권의 주장을 여과 없이 보도했다.

공정언론시민연대가 2007년 11월 1일 김 씨 입국부터 12월 4일 검찰 발표 전까지 KBS와 MBC의 뉴스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BBK와 관련해 KBS는 85건, MBC는 106건 등 하루 평균 2, 3건씩 보도했다. MBC의 경우 보도 제목이 범여 측에 유리한 게 98.8%였으나 이 후보 측에 유리한 것은 1.2%에 불과했다.

PD수첩은 2007년 11월 20일 ‘BBK 이면계약의 정체는’을 시작으로 ‘이명박, BBK 명함의 진실은’, ‘검찰 발표 임박 BBK 진실공방’ 등 3주 연속 BBK 문제를 다뤘다.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은 김 씨의 누나이자 BBK 사건과 관련 있는 에리카 김 씨를 30분 넘게 인터뷰하면서 김 씨의 일방적 주장을 전달했다는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한겨레신문은 김 씨의 옥중 인터뷰를 통해 “BBK의 투자유치는 모두 이 후보가 한 것이며 김재정 씨의 회사 다스가 BBK에 투자한 190억 원도 이 후보의 돈”이라는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다. 이 후보 측은 당시 “범죄 혐의가 있는 사람의 말을 그대로 옮겼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고, 서울중앙지법은 올해 2월 6일 3000만 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서정보 기자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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