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골프’ 현역간부 1만명 조사… 軍 발칵

  • 입력 2009년 4월 4일 02시 55분


軍 ‘근무시간 골프’ 무단이탈죄로 군의관 21명 구속

“감당 못할 일 벌였다” 軍안팎 표적 사정설 나돌기도

‘진급 불이익’우려 軍心 동요… 李국방 긴급수습 지시

“지금 군 간부들의 관심은 온통 ‘평일 골프’ 조사 결과에 쏠려 있다.”(국방부의 한 영관 장교)

“10월 정기 진급인사 때 평일 골프 조사를 받은 간부들이 배제될 것이라는 얘기가 퍼지면서 분위기가 흉흉하다.”(공군의 한 영관 장교)

평일 근무시간에 무단이탈해 골프를 친 군의관들의 잇단 구속에 따른 국방부의 평일 골프 조사 파장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국방부와 군 검찰은 지난달 27일부터 이달 2일까지 평일 근무시간에 군 골프장을 찾은 군의관 21명을 군 형법상 무단이탈죄를 적용해 구속했다. 군의관 2400여 명 가운데 휴가 등 정당한 이유 없이 평일 골프장을 찾은 정황이 있는 96명을 추가로 조사하고 있어 구속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군 당국은 부대가 공식 승인한 전투휴무(당직 포함)와 지휘관이 인정하는 타당한 사유, 명령에 의한 전속기간, 전역대기 직업보도 교육기간 등에 한해 평일 골프를 허용하고 있다.

군 당국은 전국 32개 군 골프장의 방문객 현황을 토대로 2006년부터 올 3월까지 평일에 골프를 친 장성을 포함한 모든 군 간부(부사관 포함)를 조사 대상에 포함했다. 조사 기간을 2006년부터로 잡은 이유는 무단이탈죄의 공소 시효가 3년이기 때문이다. 군 형법상 무단이탈죄는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돼 있다. 또 국방부 감사관실은 최근 3년간 평일 골프를 친 현역 간부 1만여 명(육군 6000여 명, 해군 1000여 명, 공군 2000여 명)에게 소명하라고 통보했다. 전체 현역 간부가 10만여 명이니 10명 가운데 1명꼴로 ‘평일 무단골프 혐의자’로 지목된 셈이다. 국방부와 합참에 근무하는 장성들도 확인 전화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 일부 장성들도 평일 골프를 친 것으로 보인다.

각종 훈련을 마친 뒤 전투 휴무일이나 휴가 외박 등 정당한 사유 외에 평일에 골프를 쳤다면 처벌이 불가피하다. 때문에 일각에선 ‘평일 골프 비행(非行)’으로 창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군 간부 구속 사태가 빚어질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국방부 관계자는 3일 “구속된 군의관들 외에 지금까지 평일 무단골프로 추가 구속된 현역간부는 없다”며 “군 검찰에서 조사 대상자를 선별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소명 요청을 받은 현역 대부분이 정식 휴가명령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해 평일에 군 골프장을 찾은 현역은 약 9만6380명(연인원)으로 집계됐다.

군 당국의 ‘평일 골프와의 전쟁’을 바라보는 군내 시선은 곱지 않다. 특정 병과(兵科)를 겨냥한 ‘표적 사정설’이 나돌고 군심(軍心) 동요 등 후유증이 커지면서 국방부가 감당하지도 못할 일을 벌인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전역을 한두 달 앞둔 군의관들이 평일 골프로 ‘무더기 구속’되면서 국방부가 특정 병과의 ‘군기 잡기’에 나선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군 당국은 지난달 초 육군의 자운대 골프장(9홀) 운영 감사를 통해 인근 대전국군병원에서 평일 무단 골프를 친 군의관들이 집중 적발된 것일 뿐 표적 사정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 결과가 다음 정기 진급인사 때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돼 군 내부가 크게 술렁거리고 있다.

군 검찰은 평일 무단 골프 횟수가 10회 이상이면 구속, 10회 미만은 불구속 처벌 방침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처벌받은 간부는 물론 처벌은 면했더라도 소명이 다소 미흡했거나 ‘조사 리스트’에 올라간 다수 장교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일부 간부는 정당한 사유로 평일 골프를 친 것도 문제 삼아 ‘잠재적 범죄용의자’로 몰고 진급에 불이익을 주려는 처사라며 강한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3년 전에 친 골프 정황까지 기억해 해명하라는 것은 과도한 요구일 뿐 아니라 결국 낮은 계급 간부들만 ‘시범 케이스’가 될 것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군 관계자는 “군내에선 평일 골프 조사 파문이 10월 정기인사의 틀을 흔들 만큼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보고 있다”며 “군 수뇌부도 사태가 이렇게까지 비화될지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군 안팎에선 이번 사태가 이상희 국방부 장관의 의중을 일부 참모들이 확대 해석해 빚어진 ‘우발적 사태’라는 얘기도 나온다. 군 소식통은 “이 장관도 뒤늦게 심각성을 깨닫고 감사관실에 후유증을 최소화하면서 사태를 수습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이르면 다음 주까지 평일 무단 골프를 친 징계 대상자를 최종 선별해 발표한 뒤 조사를 마무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군 소식통은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가 임박한 가운데 군이 평일 골프 문제로 어수선한 모습을 보여 안보 불안을 야기하고 국민의 신뢰를 떨어뜨릴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육해공군본부는 3일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대비해 주말인 4, 5일 모든 장성의 군 골프장 이용을 금지했다. 군 관계자는 “영관 장교는 각자 판단하도록 지시했지만 비상 상황인 만큼 군 골프장을 이용하는 현역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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