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 10대들 동거하며 ‘잔혹 살인극’

  • 입력 2009년 3월 23일 02시 56분


4명이 지적장애女 폭행… 숨지자 암매장

애정관계 의심이 발단… 21일간 각종 ‘고문’

살해전 피해자 몫 정부보조금도 빼내 쓴듯

지적장애 2급인 유모 양(17)은 같이 살던 10대 ‘오빠’ 3명과 동갑내기 여자 친구에게 21일 동안 거의 매일 매를 맞았다.

이들 10대 4명은 유 양을 2, 3시간씩 의자에 묶어 놓고 흉기 끝을 몸 위로 떨어뜨리거나 문신을 새겨준다며 바늘로 찔렀고 줄넘기를 채찍처럼 휘둘렀다.

결국 마지막 폭행이 된 18일 밤에는 “사귀는 남자를 두고 다른 남자에게 접근했다”는 이유로 맞아야 했다. 이날은 전자레인지로 달군 숟가락과 젓가락 등 쇠붙이로 폭행을 당해 화상을 입은 채 정신을 잃었다.

이모(19), 강모(19), 김모 씨(19) 등 함께 살던 10대 4명은 “꾀병부리지 말라”며 방치했고, 유 양은 다음 날 숨진 채 발견됐다.

한때는 유 양을 살갑게 대해주었던 이 씨 등은 시신을 노끈으로 묶고 이불에 싼 뒤 집에서 1.7km 떨어진 야산에 구덩이를 파고 암매장했다.

이런 환경에서 가출과 귀가를 되풀이하던 유 양은 자신을 따뜻하게 위로해주던 이 씨를 인터넷 채팅 사이트에서 만나 2007년 7월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유 양은 지적장애를 앓고 있었지만 의사 표현과 인터넷 채팅이 가능한 지적 수준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친의 사망 등으로 혼자 지내게 된 강 씨는 지난해부터 이 씨 등 2명의 동창과 김 씨의 여동생까지 경기 성남시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불러들여 함께 생활해 왔고 이 씨가 유 양을 불러내 1월부터는 모두 5명이 함께 생활해 왔다.

단독주택들이 밀집한 이 집 주변 이웃들은 “아이들이 몰려다니는 정도로 생각했지 혼숙해 가며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유 양과 사귀던 이 씨는 자신의 친구 김 씨가 유 양과 사귀는 것으로 의심했다. 그러나 “유 양이 사귀자고 먼저 접근해왔다”는 김 씨의 말에 이들은 지난달 26일부터 유 양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14일에는 유 양이 경기 평택시의 집을 찾아갈 때 강 씨와 김 씨가 동행해 딸을 집에 붙잡아 두려는 유 양의 아버지를 밀쳐내고 유 양을 다시 자신들의 다세대주택으로 데려오기도 했다.

경찰은 유 양이 정부로부터 매달 40만∼1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았기 때문에 이 씨 등이 이 돈을 노렸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유 양을 살해하고 암매장한 다음 날인 20일에는 이 씨 등이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 채 현금인출기에서 유 양의 현금지급카드로 38만 원을 인출해 갔다.

경찰은 또 함께 생활하기 시작한 1월부터 보조금을 생활비로 충당했던 것으로 보고 유 양 통장의 돈이 어디로 빠져나갔는지 조사 중이다.

성남중원경찰서는 이 씨 등 유 양 살해에 가담한 10대 4명에 대해 폭행치사 등의 혐의로 22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성남=이동영 기자 argus@donga.com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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