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잊자”…‘자포자기’ 마약사범 늘어

  • 입력 2009년 3월 5일 02시 58분


올 들어 35명 적발

지난달 8일 서울 강남구에 사는 가정주부 김모 씨(40)는 집에서 히로뽕을 투약하고 있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검찰 수사관들에게 꼼짝없이 걸리고 말았다.

검찰 수사관들은 김 씨를 잡으러 온 게 아니라 마약 복용 혐의를 받고 있던 남편 구모 씨(38)를 붙잡으러 왔다가 엉뚱하게 김 씨가 적발된 것. 며칠 뒤 구 씨 역시 체포돼 부부가 모두 구속되는 신세가 됐다.

어릴 때 미국으로 입양돼 미국 존스홉킨스대와 인디애나대 대학원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음악인 M 씨(32). 직업을 구하러 국내에 들어와 있다가 땅콩버터로 위장한 대마 9.25g을 국제우편을 통해 반입하려다 적발됐다.

인터넷과 국제우편 등을 통한 마약 거래가 늘면서 마약을 투약하는 사람들의 직업과 계층이 다양화되고 있어 검찰이 전방위 단속에 나섰다.

서울중앙지검 마약조직범죄수사부(부장 이두식)는 올 들어 2월까지 35명의 마약사범을 적발해 이 가운데 11명을 구속했다고 4일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80% 이상 증가한 것이다.

최근 검거된 마약사범 가운데는 경제력이 약한 서민도 적지 않게 포함돼 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불황이 길어지면서 고달픈 현실을 잊기 위해 ‘자포자기’ 식으로 마약에 손을 대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탈북자 출신인 최모 씨(45)는 2000년 10월 가족과 함께 국내에 들어와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 왔다.

지난해 6월 생활이 어려워지자 일자리를 찾으러 중국에 갔다가 “마음이 답답할 때 도움이 된다”는 중국동포 무역업자 정모 씨의 권유로 히로뽕에 손을 댔다. 최 씨는 이후 6개월 동안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4차례에 걸쳐 히로뽕을 투약하다 적발돼 올 1월 중순 구속 기소됐다.

경기 김포시의 한 택시회사 노조위원장인 또 다른 최모 씨(41)는 지난해 10월 중국에서 국제우편을 통해 히로뽕 10g을 380만 원에 구입해 김모 씨 등 2명과 함께 투약했다가 구속됐다.

검찰은 최근 인터넷 쇼핑몰을 통한 마약거래가 늘자 전담 수사인력을 두고 실시간 단속을 벌이기로 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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