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환자 성폭행, 강간죄 첫 인정

  • 입력 2009년 2월 19일 02시 58분


법원 “30년간 여자로 살아 성정체성 확고”

96년 대법판례와 달라 상고심 판결 주목

호적상으로는 남자인 성전환자(트랜스젠더)를 성폭행한 것은 강간죄에 해당한다는 첫 판결이 나왔다. 지금까지 법원은 비슷한 사건에 강제추행죄를 적용해 처벌했다.

부산지법 형사5부(부장판사 고종주)는 18일 가정집에서 돈을 훔친 뒤 성전환자 A 씨(58)를 성폭행한 혐의(강간 및 절도)로 B 씨(28)에게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 사회봉사 120시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성전환 수술을 한 A 씨가 30년 넘게 여성으로 살았고 보통 여성처럼 남성과 성행위가 가능한 점, 명백히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받은 점 등에 비춰 볼 때 강간죄의 피해 대상인 ‘부녀(婦女)’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호적상 남자지만 이는 출생 당시 신고한 성(性)으로, 피해자 A 씨의 진정한 성을 나타내기 어렵다”며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이 확고해 남성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없고 피고인 B 씨 또한 범행 당시 A 씨를 여성으로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강간죄 피해 대상으로 볼 수 없다는 견해도 있지만 관련 법리와 이번 사건의 사실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단정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B 씨는 지난해 8월 부산 부산진구의 가정집에 들어가 A 씨를 흉기로 위협해 10만 원을 뺏고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5년을 구형받았다.

부산지법 박주영 공보판사는 “성 정체성이 분명한 일부 성전환자는 사회적, 법적으로 여성과 동등하게 봐야 하며 성적 소수자의 인권을 좀 더 보호하겠다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법원은 1996년 비슷한 사건에서 “성 염색체가 남성이고 여성과 내·외부 성기 구조가 다르며 여성으로서 생식능력이 없는 점, 남자로 생활한 기간(33년) 등을 볼 때 피해자(당시 38세)를 여성으로 볼 수 없다”며 강간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번 사건이 대법원 상고심까지 올라가면 어떻게 결론이 날지 주목된다.

부산=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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