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치락뒤치락 ‘3일간의 법정드라마’

  • 입력 2008년 12월 25일 02시 58분


모친살해 혐의 20대, 국민참여재판서 무죄

첫째날 - 소방관 “방화 가능성 높다” 검찰 손들어줘

둘째날 - 지인들 “母子 사이 좋았다” 배심원단 고심

셋째날 - 재판부 “배심원 의견 따라 살인혐의 무죄”

“피고인은 10월 1일 오전 7시경 PC방에서 돌아온 뒤 수면제를 달라는 어머니와 다투다 격분해 칼로 어머니의 손을 찌르고 집에 불을 질렀습니다.”(검사)

“평소 알코올과 약물중독 증세가 있는 어머니가 수면제를 복용하려 하자 이를 말리기 위해 약을 뺏어 자신이 대신 먹은 뒤 잠이 들었을 뿐, 피고인은 집에 불을 지르지 않았습니다.”(변호인)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 한양석) 심리로 22∼24일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는 검찰과 변호인 측이 말다툼 끝에 어머니를 칼로 찌른 뒤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를 숨지게 한 혐의(존속살해 등)로 구속 기소된 조모(24) 씨의 유무죄를 놓고 날선 공방을 벌였다.

조 씨는 자신의 혐의 사실을 부인하며, 일반 시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

법정에서 검찰 측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칼과 조 씨 모자의 다툼으로 어지럽혀진 집안 사진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또 수면제 복용이 범행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관련 분야 전문의를 증인으로 채택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변호인 측은 “조 씨가 어머니의 수면제를 빼앗아 먹은 이후의 상황을 기억하지 못하며, 조 씨가 불을 질렀다는 직접증거가 없다”며 조 씨 모자의 주변 사람들을 대거 증인으로 신청했다.

검찰 측의 신청으로 경찰관과 소방관들이 증인으로 나선 재판 첫날의 분위기는 조 씨에게 다소 불리하게 돌아갔다. 현장에 출동했던 경찰관은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보니 조 씨가 집 밖에 멍한 표정으로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당신 집이냐’고 묻자 고개를 숙였다”고 증언했다. 화재 현장을 감식한 소방관도 “불이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방화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판 둘째 날 조 씨의 아버지와 주변 사람들이 증언대에 서면서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조 씨의 아버지는 “(이혼하기 전) 피해자가 수면제를 복용하면 피우던 담배를 끄지 않고 잠이 드는 등 제정신이 아닐 때가 많아서 불안했다. 평소 성격도 괄괄한 면이 있었다”며 화재가 조 씨 어머니 때문에 일어났을 가능성을 암시했다.

수면제 분야 전문의는 “수면제를 과다 복용할 경우 잠든 뒤 깨어날 때까지 그 사이에 한 행동을 기억하지 못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증언했다.

조 씨 어머니가 일하던 술집의 사장은 “피해자가 생전에 아들 자랑을 자주 했다. ‘아들이 일본의 유명 음식점에 취직돼 명품 조리도구를 사주고 싶다’고 이야기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고 진술했다.

반면 이웃 사람들은 “조 씨 모자가 싸우는 소리를 들었다”며 검찰 쪽에 힘을 실어주는 증언을 했다.

증인이 바뀔 때마다 검찰과 변호인은 물론이고 배심원석에서도 질문이 끊이지 않았고, 13명에 이르는 증인 신문은 23일 오후 6시가 넘어서야 끝났다. 요통을 앓던 한 배심원이 중간에 사임할 정도로 긴 ‘마라톤’ 재판이었다.

배심원단은 법원이 준비한 샌드위치로 간단히 저녁식사를 마친 뒤 3시간 반에 걸쳐 토론을 벌였다. 배심원단은 조 씨가 어머니를 다치게 했다는 부분에는 6 대 3의 의견으로 유죄로, 집에 불을 질러 어머니를 숨지게 했다는 부분에는 “조 씨가 그랬다고 인정할 직접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역시 6 대 3으로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이 시작된 지 사흘째인 24일 오전 1시 반 재판부는 배심원단의 의견을 받아들여 조 씨에게 흉기 존속상해 혐의만 유죄로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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