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액수 커 5년이상 징역 ‘특경가법상 배임혐의’ 적용

  • 입력 2008년 8월 21일 02시 50분


《서울행정법원은 20일 정연주 전 KBS 사장이 낸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하면서 순수하게 법률적 판단에 초점을 맞춰 판단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진행될 해임처분 무효확인 본안소송 역시 같은 재판부가 맡고 있다. 본안소송의 향배를 어느 정도 점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날 결정의 의미는 결코 가볍지 않다. 검찰은 이날 정 전 사장을 1892억 원이라는 거액의 배임 혐의로 불구속기소했다. 벌써부터 검찰은 유죄 입증을 자신하고 있다. 해임무효 재판과 비슷한 시기에 열리게 될 배임 혐의 재판에서도 법정공방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

■ 검찰, 배임혐의 기소 배경

“연임 욕심으로세금환급 소송 서둘러서 취하”

검찰이 20일 정연주 전 KBS 사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기소한 것은 ‘사장 연임’이라는 개인적인 이유로 KBS의 조세 소송을 서둘러 취하했다고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2004년 국세청과의 조정 무산→2004, 2005년 KBS의 경영 악화→2005년 7월 노동조합의 퇴진 압박→법인세 환급을 통한 2005년 사업연도 흑자 전환이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사장 연임을 위한 하나의 과정이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 관계자는 “판례와 기록 검토를 했지만 결국은 구체적인 정황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확보한 증거에 비춰보면 정 전 사장의 ‘고의적인’ 배임 혐의 입증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정 전 사장이 2004년 6월 서울지방국세청 관계자와 1443억 원에 조정을 시도했다가 “1443억 원 가운데 459억 원만 환급 가능하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밝혔다.

정 전 사장은 이듬해 KBS의 적자폭이 사상 최대로 예상되자 구조조정 계획을 세웠고, 노동조합은 “경영위기를 노조에 전가한다”면서 정 전 사장 퇴진 압박 운동을 벌였다.

이어 같은 해 7월 18일부터 사흘 동안 사장 불신임 투표가 진행됐고, 정 전 사장은 개표 1시간 전 노조위원장에게 “적자 발생 시 경영진이 총사퇴한다”는 합의서를 썼다.

정 전 사장은 합의서 작성 일주일 전 국세청과의 조정을 반대한 외부 변호사를 해고한 뒤 사내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해 항소심 재판부에 조정 기일을 신청했다.

2005년 12월 국세청으로부터 법인세를 환급받은 KBS는 그해 적자에서 벗어났으며, 정 전 사장은 2006년 4월 연임됐다. 검찰은 무엇보다 2004년 국세청이 제시했으나 KBS가 거부했던 조정안을 정 전 사장이 뒤늦게 수용한 점을 주목하고 있다.

검찰은 정 전 사장의 배임 액수가 큰 만큼 무기징역이나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한 특경가법을 적용했다. 법원이 이 배임액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한다면 정 전 사장으로서는 중형이 불가피한 셈이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 법원 “순수하게 법률적 판단”

“해임의 위법성 단정할 수 없어”정부 손 들어줘



정연주 전 KBS 사장의 해임문제를 둘러싼 법적 공방의 1라운드에서는 법원이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이 20일 정 전 사장의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기각함으로써, 정부는 신임 KBS 사장 선정을 위한 절차를 예정대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 만일 법원이 정 전 사장의 신청을 받아들였다면, 정 전 사장은 해임 무효소송의 결론이 날 때까지 법적으로 사장직을 유지할 수 있게 돼 신임 사장이 임명될 때에는 KBS 사장이 2명이 존재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법원은 이번 결정이 사회 정치적 논란이 있는 사안이지만, 철저하게 법률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통상 행정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이 들어오면 법원은 ‘집행정지가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막기 위한 긴급한 조치’인지에 초점을 맞춘다.

이번 사건을 맡은 서울행정법원 정형식 부장판사는 “해임이 정 전 사장에게 회복할 수 없을 만큼의 손해를 줄 정도로 위법하진 않다”고 판단했다. 즉, 당장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정 전 사장의 사장직 복귀나 해임 기간 중 임금 수령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정 전 사장 측 변호인의 반대 논리가 해임의 위법성을 입증할 만큼 충분하지 못한 것도 기각의 주된 이유가 된 것으로 보인다.

정 전 사장 측은 “대통령의 ‘임면권’을 ‘임명권’으로 바꾼 것은 대통령의 해임 권한을 없애기 위한 조치”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러나 재판부는 ‘대통령에게 해임권이 있느냐’라는 논란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은 것 같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검찰이 이날 1892억 원의 배임 혐의로 정 전 사장을 기소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또한 앞으로 정 전 사장 측이 해임처분의 위법성을 충분히 입증하지 못할 때에는 이번 기각 결정이 본안 소송의 결론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업무상 배임죄와 특경가법상 배임죄: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죄 모두 ‘업무상의 임무에 위배하여 제3자로 하여금 이를 취득하게 하여 본인에게 손해를 끼칠 때’ 적용된다. 둘 다 배임의 고의가 입증되어야 처벌 가능하다. 그러나 배임 액수가 50억 원 이상일 때는 형법 대신 형량이 더 무거운 특경가법을 적용한다. 특경가법은 무기징역이나 5년 이상의 징역, 형법은 10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선고하게 돼 있다. 검찰이 특경가법으로 기소하더라도 법원이 배임 액수를 산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형법으로 처벌하기도 한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


▲영상취재 : 서중석 동아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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