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의 그늘… 캠퍼스로 못돌아가는 학생들

  • 입력 2008년 7월 22일 03시 04분


■ 가계수입 줄어 “학업대신 생업”… 휴학생 급증

“등록금 감당 못해… 부모님께 손벌리기 죄송”

“자취방 값이라도 마련해야” 아르바이트 전쟁

교과부 올 학자금 대출 2년새 7만명 늘어 32만명

“어려운 집안 사정 뻔히 알면서 부모님께 어떻게 손을 벌릴 수 있겠습니까. 아쉽고 힘들더라도 제가 학교를 쉬고 돈을 버는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최근 경기 악화로 학업을 중단하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지방 출신 학생은 서울로의 유학을 포기하고, 군복무를 마친 학생은 복학을 미루는 상황이다. 가계 경제에 불어 닥친 한파로 비싼 생활비와 등록금을 감당할 수 없게 된 탓이다. 이들은 가정의 어려움을 하소연하면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학업 대신 고단한 생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 학교 대신 일터에서 뛰는 대학생

광주에서 올라와 서울에서 자취생활을 하던 J대 3학년 박모(24·여) 씨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휴학을 택했다. 지난해만 해도 월세 35만 원으로 학교 근처에 괜찮은 방을 구해 지냈다. 하지만 요즘은 물가가 올라 방을 옮겨야 했다. 박 씨는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달에 50만 원씩 벌고 있지만 월세를 내고 남은 돈으로는 생활비도 버거운 형편이다.

박 씨는 “아버지가 인쇄소를 하시는데 일감 대부분이 홍보물이나 포스터 인쇄다. 그런데 경기가 어렵다 보니 주문이 뚝 끊겨 가게 문을 닫을 처지가 됐다”며 “이런 상황에 학업을 계속하는 건 무리라고 판단해 아예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박 씨와 같이 생활고로 휴학을 택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서울시립대의 경우 2006년 1학기 1464명이 휴학을 택했지만 2007년 1학기에는 2236명, 2008년 1학기에는 2547명으로 휴학생이 급증했다. 한양대 서울 캠퍼스도 지난해 1학기 2682명에서 올 1학기에는 2827명으로, 중앙대 역시 6406명에서 6682명으로 늘었다. 한국외국어대도 같은 기간 3755명에서 3891명으로 휴학생이 늘었다. 등록금과 생활비 부담 때문에 일단 학업을 중단하는 대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군복무 때문에 휴학을 했지만 제대 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한 달 전 군복무를 마친 강모(24) 씨는 서울의 대학으로 복학하는 대신 대구 집으로 내려갔다. 이번 가을 학기부터 학업을 계속할 작정이었지만 살인적으로 치솟는 물가와 등록금 때문에 복학을 미뤘다.

강 씨는 “다시 학교생활을 시작하려면 300만 원이 훌쩍 넘는 등록금도 내야 하고 자취방도 구해야 하는데 주변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당장 학교 식당 밥값만 1000원대에서 2000원대로 껑충 뛰었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광고홍보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한 달에 80만 원씩 벌고 있는 강 씨는 “빨리 졸업해서 취직을 해야 할 텐데 기업에서 요구하는 해외연수는 엄두도 못 내니 걱정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 학자금 대출과 휴학에 매달려

대학생의 생활고는 학자금 대출 현황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2006년 1학기에 25만6227명이 학자금 대출을 받아 갔지만 2008년 1월에는 32만7261명이 등록금을 내기 위해 대출을 받았다.

교과부 관계자는 “학자금 대출이 급증한 데는 제도가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대출을 받는 대학생이 그만큼 많아졌다는 얘기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하지만 가정형편이 정말 어려운 학생들은 학자금 대출도 쉽지 않다. 서울의 S대 4학년인 서모(26·여) 씨는 졸업을 한 학기 앞두고 휴학을 택했다. 음식점을 하시던 부모님이 최근 가게 문을 닫은 데다 학자금 대출도 받을 수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서 씨는 “지난해에도 학자금 대출을 받아 겨우 학교를 다녔다. 대출금을 갚으려고 아르바이트도 했는데 월급을 제때 받지 못해 대출금이 연체됐다. 그래서 이번 학기에는 학자금 대출도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됐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결국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한 서 씨는 요즘 학교 대신 학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매일 10시간씩 중학생들을 가르치고 한 달에 300만 원을 받는다. 서 씨는 “몇 달만 고생하면 다음 학기엔 1년 치 등록금에 생활비까지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장학금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J대 3학년 박모(24) 씨는 “찾아보니 학내에 경제사정으로 휴학을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 학생을 대상으로 한 장학 프로그램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면서 “대출금리가 8%대까지 치솟는 학자금 대출도 문턱이 높기는 마찬가지여서 장학금에 기대를 걸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외국어대의 경우 복지장학금 신청자가 크게 늘었다. 2008년 1학기 21명을 모집하는 데 200여 명이 신청해 10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4, 5년 전과 비교해 경쟁률이 두 배가량 높아졌다.

한국외국어대 학생복지위원장 김현정 씨는 “상담을 받아보면 확실히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학자금 대출이나 장학금에 대해 물어보는 학생이 많아졌다”며 “2학기가 되면 복지장학금 대상자에서 제외되거나 갚아야 할 학자금 대출 이자가 늘어 고민하는 학생들이 더 많아질 것”이라고 전했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윤정아(중앙대 신문방송학과 4년) 씨와 채승기(한국외국어대 경영학과 4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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