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은 줄고 ‘단체’가 주도… 변하는 촛불

  • 입력 2008년 6월 16일 02시 58분


촛불문화제 참석자들이 15일 새벽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재협상을 촉구하며 거리 행진에 나서자 경찰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 일대에 통제선을 설치하고 청와대로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김재명 기자
촛불문화제 참석자들이 15일 새벽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한 재협상을 촉구하며 거리 행진에 나서자 경찰이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 일대에 통제선을 설치하고 청와대로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김재명 기자
서경석 목사 “촛불 그만”서경석 목사가 1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장기간 계속되는 촛불문화제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운동을 친북 좌파가 조종하고 있다며 13일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박영대 기자
서경석 목사 “촛불 그만”
서경석 목사가 15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장기간 계속되는 촛불문화제를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미국산 쇠고기 반대 운동을 친북 좌파가 조종하고 있다며 13일 1인 시위를 시작했다. 박영대 기자
어제 3000여명 참석 밤 10시께 차분한 마무리

시내 곳곳에서 산발적 진행… ‘게릴라전’ 양상

퍼포먼스 위주 집회… 경찰도 평상근무복 차림

‘광우병 위험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을 반대하는 국민대책회의(국민대책회의)’가 주최하는 촛불집회 참가자가 크게 줄어들고 있다.

집회 주도 세력도 일반 시민에서 시민단체로 바뀌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주최 측인 국민대책회의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대신 정권 퇴진 운동을 부각시키면서 뚜렷해졌다.

○촛불 열기 가라앉고 있다

6·15 남북공동선언 8주년 기념일인 15일 오후 7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는 3000여 명(경찰 추산)이 참가했다.

참가자가 크게 줄면서 집회 열기가 가라앉았다. 거리 행진도 차분하게 진행돼 큰 충돌 없이 오후 10시경 마무리됐다.

대규모 시위대가 가두 행진을 하면서 경찰과 밤샘 대치를 벌였던 이전 집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

강원 등 일부 지역에서는 참가자가 적어 집회가 무산됐다. 대구 광주 전북에서도 평소보다 적은 20∼200명이 모여 오후 9시 반경 집회를 모두 마쳤다.

기념행사와 맞물려 대규모 집회가 될 것이란 예상이 크게 빗나간 셈이다.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는 이날 오후 4시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기념식과 문화제를 열었다.

앞서 오후 1시에는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용산역 광장에서 결의대회를 여는 등 도심 곳곳에서 8주년 기념행사가 열렸다.

이에 따라 행사 참가자가 촛불집회에 대거 합류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 집회 참가자는 훨씬 적었다.

국민대책회의가 이날 오후 5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연 토론회에도 500여 명이 참석하는 데 그쳤다.

공기업 민영화, 수돗물 민영화, 교육 자율화, 대운하 반대, 공영방송 사수 등 ‘5대 의제’를 촛불집회 쟁점으로 설정한 뒤 처음 열린 의견 수렴의 장이었지만 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14일 역시 최근 분신자살한 이병렬 씨 장례식과 연계돼 진행됐지만 참가자는 1만2000여 명이었다.

6월 민주항쟁 21주년을 맞아 열린 10일 집회에 약 8만 명(경찰 추산)이 참가한 데 비하면 크게 줄었다.

‘릴레이 촛불집회’가 5일부터 8일까지 72시간 동안 계속될 때는 하루 최고 5만6000여 명, 연인원 13만여 명(경찰 추산)이 참여했다.

○일반 시민 대신 ‘관계자’가 많아졌다

촛불집회 규모가 계속 줄어드는 현상은 참가자 중에서 일반 시민의 비중이 줄어드는 것과 맞물려 있다.

15일 집회에서 일반 시민의 비중은 1950여 명(경찰 추산)으로 전체 참가자의 3분의 2 정도였다. 나머지는 재야 시민단체, 민주노동당, 민주노총, 인터넷 단체 소속 관계자였다.

14일에도 일반 시민의 비중은 전체 참가자의 3분의 2 수준에 머물렀다.

국민대책회의는 14일은 이병렬 씨 장례식, 15일은 6·15 남북공동선언 8주년 기념행사와 함께 대규모 집회를 계획했다.

국민대책회의는 정부에 제시한 전면 재협상 수용 시한(20일)까지 소규모 촛불집회를 계속 진행하면서 기념행사가 있는 날에는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겠다는 방침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속단하기는 이르지만 촛불집회에 참가하는 중심층이 일반 시민에서 시민단체 등의 관계자로 바뀌는 양상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는 “15일 밤 열린 촛불집회에선 낮에 6·15 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와 민노당이 주관한 6·15 남북공동선언 8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대거 참가했다”고 말했다.

○‘정치 구호’가 본격적으로 등장

2002년 주한미군 장갑차에 치여 숨진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 양의 6주기와 연계한 13일 집회에서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상관없는 정치적 이슈를 집중적으로 다루자 일반 시민이 고개를 돌렸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대책회의는 그동안 △공영방송 민영화 반대 △주한미군 철수 △한나라당 반대 △공기업 민영화 반대를 주장했다.

13일 밤에는 공영방송 민영화 반대와 관련된 사안을 집중적으로 언급하며 KBS와 MBC 본사가 있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로 행진했다.

시위대가 처음으로 도로를 점거했던 지난달 24일 이후 촛불집회에서 광화문, 종로 일대가 아닌 곳에서 가두 행진을 하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국민대책회의는 15일 촛불집회에선 △방송 민영화와 광우병(16일) △대운하와 광우병(17일) △의료 민영화와 광우병(19일) 등 정치적인 주제와 광우병 쇠고기를 연관시켜 집회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회사원 이모(30) 씨는 “촛불집회에 ‘생각 있는 시민’들이 참가한 것은 광우병 위험 쇠고기를 우려해서이다. 반정부 집회로 촛불집회의 주제가 변한다면 집회 참가자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산발적, 부드럽게 변한 촛불집회 진행 방식

집회 진행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여러 장소에서 산발적으로 펼쳐지는 ‘게릴라전’ 같은 양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안티 이명박’ 카페 회원들은 17일 오후 7시부터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집회와는 별도로 여의도 한나라당사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장관회의가 열리는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앞에서 17, 18일 오후 6시부터 촛불집회를 열자는 주장도 인터넷에서 확산되고 있다.

그동안 주말에는 새벽까지 집회가 진행되며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했지만 14, 15일에는 특별한 마찰 없이 집회가 진행됐다.

시위대는 대형 퍼포먼스 위주로 집회를 진행했고 경찰 역시 근무복 차림의 경찰관을 폴리스라인 인근에 투입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 영상취재 : 동아일보 사진부 김재명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