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문화&사람]<28>논현동 한국자수박물관 허동화 관장

  • 입력 2008년 6월 2일 02시 57분


전통자수 보자기 침장 종이공예품 등 전통규방용품 3000여 점을 모아 30년 넘게 한국자수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허동화 관장. 문화재급 수집품은 사회가 공유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재명 기자
전통자수 보자기 침장 종이공예품 등 전통규방용품 3000여 점을 모아 30년 넘게 한국자수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허동화 관장. 문화재급 수집품은 사회가 공유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재명 기자
“해외반출 막자” 40년 자수-보자기 3000점 수집

“해외 소개하자” 40회 美-英-日-佛-獨 등서 전시

국내 最古 자수병풍 등 보물 2점도 소장

“치과의사 아내가 든든한 스폰서 역할 했죠”

“수집은 인간의 본능이죠. 기업인이 돈을 버는 행위도 일종의 돈 수집 아닌가요.”

한국자수박물관 허동화(83) 관장은 1976년 자신이 살던 서울 중구 을지로 건물에 작은 박물관을 열었다. 남들이 주목하지 않던 자수와 보자기 등 전통 규방용품을 박물관에 채웠다.

1978년 6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통자수특별전를 시작으로 국내외 전시회를 여러 차례 열었다.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등 해외에서만 40번을 넘었다.

전시회를 위해 만든 포스터만을 모아 걸으니 또 하나의 전시회가 됐다. 허 관장은 40여 년간 전통 자수와 보자기의 지킴이를 자처하고 민간 외교관으로 살았다.

○ 전통 자수·보자기 지킴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예술품으로 도자기 민화 보자기를 꼽아요. 자수는 제가 아니라도 다른 누군가가 지켰겠지만 보자기는 제 손이 아니었다면 아마 사라졌을 겁니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에서 상무와 감사까지 지냈다. 한전에서 근무하던 1960년대 중반 우연히 외국인들이 전통 자수를 대량 반출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 것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전통 자수와 보자기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동안 모은 자수와 보자기는 3000여 점. 자수박물관에 다녀간 국내외 관람객은 줄잡아 700만 명에 이른다.

“구운몽을 그린 자수 병풍을 충남 금산에서 사는 분이 갖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내려갔어요. 주인 앞에서 감탄사를 연발하자 주인이 대번에 안 팔겠다고 하더군요. 가져오는 데 꼬박 10년 걸렸어요.”

대한제국에서 대사를 지냈던 민철훈이 입었던 대례복과 훈장, 의식검도 어렵게 손에 넣었다. 3만 원이면 살수 있었지만 함께 내려간 지인이 무릎을 치는 바람에 수백만 원이 훌쩍 날아갔다.

치과의사로 일하는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돈이 필요할 때 선뜻 내줬고 급한 김에 금붙이를 들고 나가도 참아줬다.

수집품을 국립중앙박물관 민속박물관 종이박물관 아주대박물관에 기증할 때도 아내는 선선히 동의했다.

○ 보물급 자수 한자리에

한국자수박물관은 1990년대 초 서울 강남구 논현동으로 옮겼다. 전통자수 보자기 침장 종이공예품 등 3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소장품 중에는 조선시대 승려의 가사인 이십오조가사(보물 654호)와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자수병풍인 자수사계분경도(보물 653호)가 있다.

십장생보료, 당의오조룡보, 대사헌해치흉배, 충정공 민영환의 부당대례견장, 왕비방석, 사조룡왕세자보, 박쥐문침장, 수목문수보, 화문수보, 버선본보, 수저집 등 희귀 자수품도 가득하다.

자수 전시 받침대로는 오래된 다듬잇돌을 놓았다. 다듬잇돌 740여 개를 모아 공공 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박물관에서도 패션쇼 같은 재미있는 행사를 여는 등 대중에게 다가가야 ‘흥행’할 수 있어요. 국내 박물관에 머무르면 장래가 없지요. 외국 박물관의 노하우를 배우고, 자신감을 갖고 소장품을 해외에 소개해야 오래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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