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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4월 7일 02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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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 앎을 위한 사고 태도로 전환하라!
사고 체계화가 없다면 각종 정보는 뇌에서 파편적으로 존재하다가 사라진다. 정보 자체는 아직 사고 판단과 실천 등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상태다. 대부분의 발명가들은 “메모하는 습관을 가져라”고 말한다. 그저 무심코 지나치는 현상과 생각을 분산된 정보로 망각시키지 말라는 의미이며,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체계화하라는 의미이다. 이때 발명가의 메모는 단순한 필기가 아니라 일상에서 주위 사물과 사람을 대하는 사고 태도와 관련되어 있다. 초점을 찾아 눈에 보이는 현상을 나열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메모한 정보를 다른 정보와 관련시켜 새로운 원리를 생산할 수 있다. 이는 발명가들이 단순한 정보를 창조의 세계로 이끄는 앎의 태도이다.
문제 해결, 정서 분출의 방향성이 관건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교양-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2001. 틀녘)’에는 아르키메데스가 왕관이 순금인지를 밝히는 장면이 나온다. 실험을 명령한 왕은 만약 알아내지 못하면 죽음을 각오하라고 협박한다. 아르키메데스는 금과 은의 질량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왕관의 부피를 알지 못하는 한 그 지식은 쓸모가 없다. 왕관을 부술 수도 없어 왕관의 부피를 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아르키메데스의 마음속에는 왕으로부터 받은 두려움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정서와 왕관의 부피를 재어보고 싶은, 즉 알고 싶은 정서가 상충한다. 우리는 아르키메데스가 회피하려는 정서가 아니라 알려고 하는 정서가 그를 사로잡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가 파편적으로 알고 있던 금, 은에 대한 질량과 일상의 목욕물이라는 두 가지의 콘텍스트가 앎에 대한 열정으로 통합되었던 것이다. 그가 ‘유레카!’라고 외치며 물 밖으로 뛰쳐나오는 장면을, 목숨을 건져서 기뻐하는 모습이라기보다 앎에 대한 열정의 결과로 기뻐하는 모습이라고 해석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이다.
전체 과업과 모욕의 갈등
일상에서 예를 들어보자. 대기업에 근무하는 신입 사원이 상사에게 보고서 때문에 인간적 모욕을 듣고 있다. 대학에는 어떻게 들어갔는지, 초등학교는 제대로 다녔는지 등 누가 듣더라도 참을 수 없는 모욕이다. 이때 그에게는 보고서 작성이라는 과업과 상사의 모욕이라는 두 가지 정서 분출의 대상이 존재한다. 자신의 정서적 태도는 주어진 과업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 해결을 위한 올바른 태도가 형성된다. 만약 그가 자신의 정서를 과업에 대한 헌신과 열정으로 전환하지 않고 상사를 험담하거나 회사(부서)에 대한 실망감으로 전환한다면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상사와 불화를 겪거나 종국에는 낙오할 수밖에 없다.
신입 사원인 그의 과업에 대한 태도가 열정적이라면 그는 부서에서 보존 연한이 다양한 각종 보고서를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중에는 현재의 상사가 과거 그의 상사에게 올린 문서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다른 동료들의 다양한 자료도 볼 수 있다. 이것들은 하나의 정보이자 자원이다. 상사의 경험들이 녹아 있는 실체적 앎이다. 그러므로 과업에 정서를 집중한 신입 사원이라면 그저 무심코 지나쳤던 창고를 민감하게 볼 수가 있어야 한다. 또한 그는 상사가 흔쾌히 결재하는 순간 “휴∼, 용케 넘어갔다”고 안도할 게 아니라 이제 하나를 배웠으며, 상사의 자료가 많은 도움이 되었노라고 조심스럽게 고백하여 상사를 협력자로 요청해야 한다. 지금은 예전처럼 인간관계가 과업을 해결해 주기보다 과업에 몰두하는 모습이 인간관계를 구조화해 주는 시대이다.
논술 장면에서의 문제
대학 입시나 로스쿨 입시에서 대하게 되는 논술시험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주어진 다양한 제시문과 출제자의 요구 사항이 있다. 둘을 잘 통합해야 하지만 대부분은 제시문의 일부에 정서적 움직임을 보이게 된다. 일부 제시문에서 이해한 내용에 매몰돼 다른 제시문을 간과하고 심지어 핵심이 아닌 문장이나 개념어에 몰두하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정서가 전체를 통합하기보다 중간의 함정에 빠지게 된 예이다. 나이가 어리거나 지력(知力)이 낮을수록 더욱 쉽게 함정에 빠진다. 이는 흡사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노처녀가 번번이 자신도 호감을 가지고 있던 남성들의 교제 신호를 무시하는 장면과도 일치한다.
멋진남: OO 씨 오늘 유난히 예쁜데?
노처녀: 뭐 잘 못 먹었어?
멋진남: ….
물론 상대방이 이전과 다른 신호를 보냈기 때문에 자신이 지금까지 해오던 표현 방식을 고수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노처녀 자신도 좋아하는 사람이고 기분 좋은 칭찬이지만 상대방의 태도가 무엇 때문인지 분석하지 못해 경직된 대처를 했다. 이는 자기 태도를 상대방의 의도에 대응시키지 못한 결과이다.
논술 출제자들은 ‘직역’보다 ‘의역’을 좋아한다. 수험생들이 문제에 직면하여 어떤 사고 태도로 문제를 해결하는지, 자원을 어떻게 통합하여 원리를 발견하는지 관심이 많다. 그들은 모종의 시스템을 알고 그와 관련한 자원을 동원하여 함의된 내용을 발견하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정서와 사고는 논제 자체에 몰입해야 한다. 논제 안에서 유형이 가진 관점을 되뇌며 제시문을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