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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월 9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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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발화 기계실 주변서 시신 35구 발견
환풍기쪽 등 곳곳에 필사의 몸부림 흔적
생지옥이었다. 하늘로는 불기둥이 치솟고 건물 구멍마다 화염이 뿜어져 나와 일대를 뒤덮었다. 경기 이천시 냉동창고 화재 현장에 도착한 소방대원들은 한동안 접근조차 할 수 없었다.
불길을 잡고 화마(火魔)가 할퀴고 간 자리로 들어서자 눈앞에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창고에 첫발을 들였던 나윤호(36) 소방대원은 “검은 연기로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상황에서 불빛을 들이댄 순간 참혹함에 고개를 내저었다”며 “사고 당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의 흔적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고 말했다.
창고 내부에 어지러이 널린 잔해 속에서 옷깃으로 코와 입을 막은 채 쓰러진 시신과 최대한 낮은 자세로 몸을 웅크린 시신들이 소방대원들의 눈에 들어왔다.
희생자 대부분은 창고에서 깊숙이 들어간 구역의 벽면을 따라 발견됐다. 최초 발화지점으로 추정되는 기계실을 중심으로 35구의 시신이 무더기로 나왔다. 지하 출입구에서 직선거리로 90여 m 떨어진 기계실 안에는 인부 16명의 시신이 엉켜 있었고, 기계실 앞의 환풍기 근처에 4구의 시신이 쓰러져 있었다.
한 소방대원은 “불이 나자 사람들이 환풍기 쪽으로 몰려든 것 같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애쓴 게 아니겠느냐”며 안타까워했다.
기계실 바로 옆 통로 쪽으로는 시신 5구가 발견됐다. 기계실이 있던 지하 1층에는 출구가 2곳 있었지만 불이 순식간에 번진 탓에 이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고스란히 변을 당했다.
성별도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새까맣게 그슬린 시신 가운데 일부는 폭발 때문에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 있었다.
기계실 반대편에서 발견된 5명의 희생자는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가 무너진 잔해에 깔리면서 시신이 더욱 심하게 훼손당했다.
구조작업도 그만큼 힘들었다. 각종 냉매 물질이 연쇄적으로 폭발해 현장 전체에 검은 유독가스가 가득 했고, 폭발의 충격으로 건물 잔해가 머리 위로 계속 떨어졌다.
홍용기(37) 소방대원은 “시신의 훼손 정도나 현장의 참혹함을 보고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20년 경력의 함병구(43) 소방위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이래 최악의 사고였다”고 말했다.
아비규환이었던 창고는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8일 칠흑 같은 어둠이 드리워진 채 황량한 모습을 드러냈다.
축구장 세 배 크기의 창고는 폭격을 맞은 듯 천장이 꺼져 대형 철골 구조물이 위태롭게 내려앉았고, 새카맣게 탄 철판조각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있었다. 바닥엔 시멘트 잔해 사이로 뜯긴 옷자락과 녹아내린 손전등 등 유류품이 곳곳에 흩어져 화재 당시의 참상을 짐작하게 했다.
이날 소방관들은 6명씩 조를 꾸려 혹시 모를 추가 실종자나 사망자 신원 파악에 필요한 유류품을 찾기 위해 오후까지 수색작업을 벌였다.
이천=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신광영 기자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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