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흥업소 ‘판촉용 성관계’는 무죄?

  • 입력 2007년 10월 8일 03시 00분


서울중앙지법 “돈 주고받지 않아 성매매 아니다” 판결 논란

술집 여종업원이 돈 많은 남자 손님을 관리하는 차원에서 가끔 성관계를 맺는 방법으로 손님을 유인해 매상을 올렸더라도 성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대가를 주고받지 않았다면 성매매 행위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그러나 여성단체는 당장 유흥업소에서 벌어지는 성매매 알선 행위의 구조를 모르고 내린 잘못된 판결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매상 올리려고 여성 종업원이 알아서 성관계?=일본에서 클럽 형태의 주점을 운영하는 윤모(32·여) 씨는 지난해 6월 서울 강남구의 한 다방에서 직업 알선 브로커 홍모(42·여) 씨에게서 3명의 여종업원을 소개받았다.

이 3명은 윤 씨에게서 250만∼600만 원의 선불금을 받고 윤 씨가 운영하는 일본의 주점에서 일하게 됐다.

윤 씨는 평소 돈 많은 손님이 오면 눈여겨봐 두었다가 특정 여종업원에게 그 손님을 지정해 주면서 잘 관리하도록 했다.

또 여종업원 스스로도 돈이 많은 손님이 오면 연락처를 알아낸 뒤 다음 날 낮에 연락해 성관계를 하면서 손님이 계속해서 주점을 찾아오도록 유인했다.

여종업원들은 성관계의 대가로 따로 돈을 받지는 않았다. 이런 ‘판촉 차원’의 성관계 때문에 손님들이 성관계를 한 여종업원을 찾는 발길이 잦아졌고 업소는 더 많은 매상을 올렸다.

▽재판부, 금품 주고받아야 성매매=윤 씨와 홍 씨는 성매매를 알선한 혐의(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됐으나 법원은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여종업원들과 성관계를 한 손님들이 윤 씨의 주점에 자주 들러 매상을 올려 줬다고 하더라도 이를 성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대가로 볼 수는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단독 구회근 판사는 “손님들이 성관계의 대가로 여종업원이나 주점 측에 금품이나 기타 재산상의 이익을 지급했거나 지급하기로 약속한 사실이 없다”며 “여종업원들로서는 손님과의 성관계를 자유롭게 거절할 수 있었고 여종업원으로서의 정상적인 역할만 하는 것도 가능했던 상황이었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7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성관계의 결과로 손님은 주점에 자주 들러 해당 여종업원을 부른 뒤 많은 매상을 올려 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점 측이 손님에게 (성관계에 따른) 추가 비용을 부담하게 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손님이 주점에 들러 매상을 올려 준 것이 과연 성관계에 대한 대가로서 재산상의 이익에 해당한다고 봐야 할지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특히 “윤 씨의 주점이 평소 성매매를 전문적으로 하는 업소로 보이지도 않는다”면서 “‘의심스러울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 소송의 대원칙에 따라 피고인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홍 씨에게는 노동부에 등록하지 않고 직업 소개를 한 혐의(직업안정법 위반)로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다.

▽여성단체, “성매매 알선 구조 몰라 내린 판결”=여성단체는 이번 판결이 유흥업소 내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성매매 알선 구조를 모르고 내린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국연대’ 정미례 대표는 “판결에 따르면 손님 관리 차원에서 여종업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손님들과 성관계를 맺은 것으로 보이는데 여종업원들이 특별히 얻는 대가도 없이 손님들과 왜 성관계를 하겠느냐”며 “이런 방법은 업주들이 성매매 알선에 따른 처벌을 피하기 위해 악용하는 것으로 국내 업소에서도 자주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형법은 속인주의(屬人主義·행위자의 국적을 기준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와 속지주의(屬地主義·해당 행위가 행해진 장소를 기준으로 법을 적용하는 것)를 모두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한국인이 외국에서 성매매 행위를 해도 처벌할 수 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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