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연령제한 철폐 공공기관, ‘열린채용’ 지지부진

  • 입력 2007년 8월 2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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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직장’ 뜨거운 관심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공기업 취업 전문학원에서 열린 공공기관 취업 설명회. 5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설명회에는 직장인, 취업 재수생, 지방 대학생 등 70여 명의 공공기관 취업준비생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원대연 기자
‘하늘이 내린 직장’ 뜨거운 관심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공기업 취업 전문학원에서 열린 공공기관 취업 설명회. 5시간 동안 진행된 이날 설명회에는 직장인, 취업 재수생, 지방 대학생 등 70여 명의 공공기관 취업준비생이 참석해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원대연 기자
《정부가 최근 298개 공공기관에 지방대 출신 우대와 연령제한 및 학력제한 철폐 등을 뼈대로 하는‘열린 채용’을 권고하면서 공공기관 취업 준비생들의 관심이 뜨겁다. 본보 취재팀이 이미 ‘열린 채용’을 도입한 8개 공공기관의 신입사원 채용 변화상을 분석한 결과 평균 나이가 높아지고, 일부 공기업에선 지방대 출신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하지만 학력철폐의 효과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 나이 불문 효과, 학력철폐는 유명무실

본보는 한국전력 한국수력원자력 한국 지역난방공사 한국토지공사 한국자산관리공사 에너지관리공사 예금보험공사 금융감독원 등 공공기관 8곳을 대상으로‘열린 채용’을 도입하기 직전 해에 들어온 신입사원과 지난해 입사한 신입사원의 학력 나이 등을 비교했다.

분석결과 평균 연령은 높아졌지만, 학력철폐의 효과는 크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만 30세 이상 신입사원 비율은 열린채용 직전 해의 평균 2.9%에서 지난해 15.7%로 크게 높아졌다.

지방대 출신 합격자도 꾸준히 늘어 열린 채용 직전 37.8%에서 지난해 44.1%로 늘었다.

다만, 이 같은 지방대 출신의 강세는 한국수력원자력같이 지방에 사업소가 있어 해당 지역 출신을 우대하거나,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는 곳에서만 두드러졌다.

정부는 2011년 지방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공공기관에 해당 지역 출신자의 채용비율도 높이도록 권장하고 있어 지방대 강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전망이다.

한수원 측은 “지원자의 능력 차가 크지않아 특정 지역 출신자를 별도 채용하거나 가산점을 주면 이들의 합격 비율이 높

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고졸 학력자를 뽑은 곳은 한국지역난방공사 1곳뿐이었고, 2년제 대학출신자의 비율도 열린 채용 직전 평균 1.1%에서 지난해 평균 1.5%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 새 채용제도 기대 반, 우려 반

취업 준비생들은 열린 채용을 권고하는 공공기관 새 채용제도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공공기관 취업 전문학원인 J아카데미가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통영빌딩에서 마련한 ‘공공기관 취업 설명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취업 준비생들로 붐볐다.

강사 윤모(31) 씨가 새 채용안의 요강을 설명하기 시작하자 이들은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귀를 기울였고, 5시간의 ‘마라톤 설명회’가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대학 재학생은 손을 들어 보라”는 윤 씨의 주문에 손을 든 공공기관 취업준비생은10여 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직장인으로 보이는 사람들과 ‘취업 재수생’이었다.

특히 정부 방침에 따라 올해 하반기부터 공공기관의 지방대 출신 채용이 늘 것으로 예상돼 지방대 학생들의 관심이 높았다.

강원대를 졸업한 뒤 2년간 회사를 다니다가 공공기관 취업에 나선 손모(27) 씨는 “지역 출신의 채용 비율이 높아지면 당연히 지방대생이 혜택을 볼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러나 군산대를 졸업한 강모(24·여)씨는 “공공기관들이 채용제도를 바꾸더라도 면접시험을 강화하면 오히려 명문대 출신이 더 유리해지는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

열린 채용이 서울 출신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불만도 적지 않게 제기되고 있다.

한전 홈페이지에는 “평생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면 가산점을 못 받게 된다”는 항의가 잇따랐다.

공공기관의 한 관계자는 “연령제한 폐지는 기회균등과 조직의 다양성 측면에서 장점이 있지만, 조직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공공기관 취업 재수생을 양산할 수 있다”며 “공무원도 지원 자격에 나이제한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 취업전문학원들도 지방대생의 공기업 지원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동영상 강좌를 개설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한 학원 관계자는 “지방에는 전문학원이 거의 없어 학기 중에 동영상 강좌를 보면서 취업준비를 하는 지방대 학생들이많다”고 설명했다.

○ ‘하늘이 내린 직장, 공기업(?)’

최근에는 삼성 등 내로라하는 대기업, 시중은행, 그리고 공인회계사 등 전문자 격증이 있는 ‘잘 나가는’ 직장인들도 공공기관 취업 전선에 뛰어들고 있다.

한전은 올해 상반기(1∼6월)에 삼성전자에서 3년 동안 일한 경력직원을 포함해 대기업 출신 여러 명을 신입사원으로 채용했다.

이날 설명회에 참석한 송모(25·여) 씨는 “시중은행에서 1년 5개월 근무하다 지난달 공공기관 입사를 준비하기 위해 사직했다”며 “워낙 똑똑한 친구들이 공기업에 지원하다 보니 너도나도 공공기관에 몰리는 ‘밴드왜건’ 효과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올해 9월 졸업하는 최모(26) 씨도 “올해 상반기 대기업 신입사원 채용에 합격했다”며 “하지만 외환위기 시절 잘 나가던 대기업들도 무너지는 현실에서 안정성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도 들어 고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취업준비생 윤모(26) 씨는 “친구들끼리‘삼성, LG, ○○공사에 붙으면 어디 갈거냐?’고 물으면 ‘당연히 공사에 간다’고들 한다”며 “공인회계사이면서 공기업 준비를 하는 친구도 있다”고 귀띔했다.

사법시험 1차 시험에 합격한 뒤 지난달 한국도로공사에 지원한 김모(32) 씨는 “공공기관 채용 때의 전공시험이 고시 과목과 같다”며 “고시와 공공기관 입사시험 준비를 병행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전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 이 기사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임형균(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과 4학년) 씨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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