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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7년 3월 1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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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 교육의 쟁점으로 부각되는 또 하나의 문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논술 교육에서 읽기 훈련과 쓰기 훈련을 어떻게 결합시켜야 하는가?” 글쓰기는 대체로 다른 사람의 글이나 주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집니다. 글쓰기를 하려면 글 읽기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글 읽기 교육은 글쓰기와 무관하게 따로 이루어질 수도 있지만, 글쓰기 교육은 글 읽기와 따로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글쓰기 교육에서는 읽기와 쓰기를 어떻게 결합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건은 바람직한 결합 방식을 구체적으로 찾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읽기와 쓰기를 그냥 병행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또 글 읽기를 잘하다 보면 자연히 글쓰기도 잘하게 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달리 말해 글 읽기가 자연스럽게 글쓰기로 전환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주장들은 모두 모호하거나 막연한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둘 사이의 연결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식으로 병행해야 하며 어떻게 서로 연결되는지 더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전환을 주장할 경우도 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어 전환이 이루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면, 글 읽은 다음에는 당연히 글을 쓰게 된다는 상식적 주장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물론 둘 사이의 결합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 상황 속에서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지 구체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동안 논술 교육에서 읽기의 주된 역할은 배경 지식 학습이었습니다. 많은 자료를 읽어서 배경 지식을 넓히고, 이것을 쓰기에 활용하는 것이 전형적인 접근이었습니다. 내용 학습으로서의 읽기는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합니다. 그러나 읽기 전체의 목표로는 부족합니다. 앞서 여러 번 강조했듯이 논술에서는 읽은 내용도 중요하지만 ‘읽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말을 많이많이 들어 왔습니다. 그래서 학생들도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실제로는 거의 읽지 못하면서도 항상 많이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립니다. 그러나 이런 강박관념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많이 읽기보다는 제대로 읽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따라서 논술에 대비한 읽기 학습의 일차적인 목표는 제대로 읽는 능력을 기르는 것으로 잡아야 합니다.
제대로 읽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우선 정확하게 읽어야 합니다. 저자의 주장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를 위해서 분석적 이해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다음으로 글을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저자의 주장을 이해한 다음, 내 입장에서 평가하면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당연히 비판적 평가 능력이 필요합니다. 결국 논술 교육에서 글 읽기는 배경 지식 형성에 그치지 말고, 이러한 두 능력을 기르는 데 주안점을 두어야 합니다. 분석적으로 이해해서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생각이 정립되어야, 이를 토대로 문제 해결을 위해 창의적으로 적용하고 응용하는 다음 과정이 가능해집니다. 논술 교육에서 읽기와 쓰기의 유기적 결합을 시도하는 대표적 사례가 ‘요약하기-논평하기-논술하기’의 세 단계로 접근하는 방법입니다. ‘요약하기’는 주어진 글의 내용과 논의 방식을 분석적으로 이해하여 그 핵심을 서술하는 단계입니다. ‘논평하기’는 주어진 글의 내용과 논의 방식을 자신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평가하는 단계입니다. ‘논술하기’란 표현은 훨씬 넓은 의미를 가지지만, 여기서는 앞의 두 과정을 통합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한 자신의 대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단계입니다.
이 접근은 비판적 사고에 기반하여 텍스트를 분석하고(요약) 평가하는(논평) 글 읽기 과정을 글쓰기 훈련의 토대로 삼고 있습니다. 우선 글을 제대로 읽는 훌륭한 독자가 되도록 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글도 독자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게 함으로써 훌륭한 필자가 되도록 하는 ‘반성적 글쓰기’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단계별 접근은 실제 통합 교과형 논술 문항에서 유사하게 구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입시 준비에서도 효용성이 있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바로 이러한 단계별 과정을 검토해 볼 것입니다.
배경 지식 형성을 위한 읽기 교육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덧붙여야 하겠습니다. 사실 교사의 준비와 노력이 가장 필요한 부분이 배경 지식 형성을 위한 읽기 학습입니다. 좀 더 세밀한 읽기 지도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책 이름만 알려주고 전체를 무조건 읽으라고 해서는 곤란합니다. 주제와 관련하여 책의 어느 부분을 읽어야 하며, 어떤 문제를 정리하고 생각해 보아야 하는지 안내해야 합니다. 필요할 경우, 읽을 자료들의 순서도 정해 주어야 합니다. 물론 어려움이 있습니다. 최근 들어 제대로 된 고전 번역들이 많이 나오고 있긴 하지만 학생들에게 읽힐만한 좋은 자료가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사들이 공동 작업을 통하여 정보를 공유하고 교환함으로써 어려움을 극복해 가야 합니다. 대학들도 학생들이 실제 읽기에 힘에 겨운 수준의 책이나 무리한 분량의 책을 이른바 필독도서로 제시하는 무책임한 일은 삼가야 할 것입니다. 신문이나 시사 주간지의 특집, 기획 기사처럼 부담이 덜하면서도 배경 지식 학습에 효율적인 자료들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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