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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7월 26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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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총리의 논문 표절 의혹을 열심히 해명하고 있는 교육부가 3월 번역해 펴낸 미국연구윤리국(ORI)의 ‘연구수행소개서(Introduction to the Responsible Conduct of Research)’를 보면 이 같은 의문이 든다.
살라미란 얇게 썰어 먹는 이탈리아 소시지다. 살라미를 잘라 먹듯이 한 연구 결과를 이용해 여러 개로 만들어진 논문이 살라미 논문이다. 이 책자는 이 같은 논문은 비윤리적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교육부는 “김 부총리는 제자인 신모 씨가 수집한 서베이 데이터를 활용했지만 연구 방법이 다르고 신 씨보다 두 달 먼저 논문을 발표한 만큼 표절은 아니다”면서 의혹을 부인하는 등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는 김 부총리가 제자의 논문을 표절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당시 신 씨의 건강이 좋지 않아 김 부총리가 논문 지도에 많은 도움을 줬고 서베이 아이디어까지 제공했는데 표절이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교육부는 공동연구가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공동연구는 아니고 거의 합동연구라 할 만큼 적극적이었다는 의미”라고 둘러대기도 했다.
교육부의 이 같은 태도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논문 조작 파문 이후 연구 윤리를 확립하기 위해 연구수행소개서를 대학 등에 배포할 때와 사뭇 다르다.
이 책자는 공동연구를 할 때는 분쟁의 소지를 막기 위해 사전에 공식 합의서를 체결할 것을 권유하고 있으며 학생에 대한 지도교수의 책임 등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 책자를 내면서 “미국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해 얼마나 철저히 조사하고 엄격하게 관리하는지를 보여 주는 사례”라고 강조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의 한 관계자는 “교육부가 김 부총리에게는 관대하고 일반 연구자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교육부가 앞으로 연구윤리를 세우라고 떳떳이 이야기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金부총리, 앞뒤 안맞는 ‘이중게재 해명’▼
한편 김 부총리 측은 1988년 2월 국민대 교내 학술지인 ‘법정논총’에 논문을 실은 뒤 같은 해 6월 한국행정학보에 이 논문을 다시 게재했다는 ‘이중 게재’ 지적에 대해 별문제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 부총리 측은 “학내 논문집은 학술진흥재단에 등재된 공식 학술지가 아니므로 논문을 이중 게재한 것은 아니다”면서 “많은 교수가 대외 논문을 학내 논문집에 다시 게재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교내 논문집에 게재한 논문을 자신의 연구 업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는 1990년 국민대 사회과학논총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간의 대립적 관계의 가능성과 기능 배분 문제’라는 논문을 실은 것을 자신의 이력서에 밝히고 있다.
학계는 연구 목적, 연구 대상, 연구 방법이 같은 논문을 다른 학술지에 중복 게재하거나 여러 편의 논문으로 발간하는 것을 이중 게재라고 보고 있다.
대한의학회는 만연한 논문 이중 게재 관행을 없애기 위해 11일 이 같은 문제를 더는 간과하지 않겠다는 공식 입장을 밝히는 등 연구윤리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려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이인철 기자 inchul@donga.com
▼野 “도덕성 치명타… 金부총리 퇴진하라”▼
25일 여야가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의 논문 표절 논란에 대해 치열한 공방을 벌인 가운데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모임(학사모)은 김 부총리의 퇴진을 촉구했다.
야당은 김 부총리의 해명과 사퇴를 촉구했으며 여당은 이를 정치공세로 치부했다.
한나라당 이주호 제5정책조정위원장은 “논문 표절사건은 교육계 수장의 양심을 의심케 하는 중대한 사건”이라며 “김 부총리가 더 늦기 전에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논문의 표절 방지를 위해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가칭 ‘학문윤리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
민주노동당 박용진 대변인은 “학술 논문을 베껴 쓰는 행위는 도덕과 청렴을 생명으로 여겨야 하는 교육계의 수장으로서 치명적인 흠”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표절 여부에 대한 사실 확인 없이 부총리의 사퇴부터 요구하는 것은 정략적 발상”이라며 “부총리가 물러나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학사모는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후문에서 김 부총리의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최미숙 학사모 상임대표는 “김 부총리와 교육부의 책임 있는 대응이 나올 때까지 지역대표들이 돌아가면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벌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김 부총리 측은 이날 문제의 논문에 대해 한국행정학회에 심의를 요청했다.
한국행정학회 윤리위원회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김 부총리 논문의 표절 여부 등을 심의하게 된다. 윤리위원회는 심의 요청일로부터 60일 이내에 심의를 마치고 그 결과를 발표해야 하며, 표절 정도에 따라 제명 자격정지 공개사과 등 징계 수준을 결정하게 된다.
김 부총리 측은 논문 표절 의혹을 처음 제기한 언론사를 상대로 명예훼손에 따른 민형사소송을 이르면 26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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