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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6년 6월 23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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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결정을 통해 대법원은 사회적 소수자의 불이익을 개선하겠다는 사법부의 확고한 의지를 보여줬다.
▽정기국회에서 입법할까=판결이 나오는 과정에서 성별 정정을 허가해야 한다는 의견과 입법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법원의 개별적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성별 정정을 허가할 수 있는 법 조항이 없었기 때문이다. 2명이 낸소수 의견도 성별 정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었다.
2002년 5월 김홍신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성별의 변경에 관한 특례법’을 발의하는 등 국회에서는 성별 정정을 허용하자는 움직임이 있었다.
두 달 뒤인 7월 3일 부산지법 가정지원은 “성전환증 환자도 헌법상 권리를 보호받아야 한다는 헌법 이념에 따라 입법 조치가 이뤄질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호적 정정을 인정했다.
국회는 같은 해 7월 10일 이 문제를 다룰 공청회를 개최했으나 16대 국회의 회기가 끝나면서 법안은 자동 폐기됐다.
이번 대법원 결정으로 올해 9월 정기국회에서는 관련법을 제정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현숙 성전환자 성별변경 공동연대 운영위원장은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실이 ‘성전환자 성별 변경 및 개명에 관한 특례법’을 준비하고 있다”며 “입법이 돼야 개별적으로 성별 정정을 신청하는 데 드는 경제적 부담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사회적 성(젠더·gender) 개념 인정=의료계는 성염색체뿐 아니라 개인의 사회적 역할이나 심리적 상태 등 다양한 요소를 기준으로 성별을 판가름해 왔다.
성염색체와 외형적 성기만을 기준으로 성별을 구분하는 것은 ‘원시적’인 방법이 된 지 오래다.
대법원은 이 같은 의료계의 의견과 사회적으로 고정된 성 역할이 변하는 현실을 판결에 반영했다.
이성애자를 ‘정상’으로 간주하고 타고난 성을 거부하는 성적 소수자를 ‘비정상’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편견을 없애는 효과가 기대된다.
물론 대법원은 성전환을 위해선 정밀한 의학적 검증이 필수적이고 장기간의 치료에 의해서도 바뀌지 않을 만큼 성전환의 필요성이 절실한 경우에만 성전환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료계 의견에 무게를 뒀다.
이에 따라 법원의 판단도 신중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여성→남성 변경땐? 병역의무 이행해야
기혼자가 성전환땐? 결혼 무효 될 수도▼
대법원은 성전환자의 성별 정정 신청을 허용해도 기존의 신분 관계와 권리 의무는 크게 바뀔 것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병역의무 이행 등 실생활에서는 적지 않은 변화가 잇따를 전망이다.
Q: 기혼자가 성전환을 하면 혼인관계가 유지되나.
A: 결혼은 무효가 될 수 있다. 민법에서 동성 결혼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혼자가 성전환한 경우 법원이 성별 정정을 허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미 혼인을 했다면 당사자가 반대의 성으로 살기를 간절히 원했다고 보기 어렵다.
Q: 성을 바꿔 남자가 됐다면 병역 의무는 어떻게 되나.
A: 병무청은 남성이 여성으로 호적의 성별을 바꾸면 병역의무를 부과하지 않을 방침이라고 밝혔다. 여성에서 남성으로 호적상 성별을 정정한 경우 병역의무 이행 대상자로 분류하기로 했다.
Q: 여성으로 성전환한 남성에 대해 강간죄가 성립하나.
A: 호적 정정이 이뤄지면 바뀐 성별을 인정하므로 강간죄가 성립한다. 하지만 성전환 수술을 받고 호적 정정을 하지 않은 사람에게 피해를 줬을 경우 피해자를 남성으로 보고 강간죄가 아닌 강제추행죄를 적용한 판례가 있다.
Q: 호적 정정 신청이 남발될 우려는 없나.
A: 성전환 수술부터 의학적으로 정밀한 검증을 거친다. 정신과 등의 오랜 진료와 정밀한 검증 없이 임의로 성을 바꾼 사람에게는 성별 정정을 허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게 법원 관계자들의 전망이다. 이미 성전환을 한 사람에게는 좀 더 유연한 기준이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소수자 보호 진일보” vs “性은 선택할 수 없다”▼
성(性)전환자의 호적상 성별 정정 신청을 허가한 대법원의 22일 결정에 대해 성전환자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지만 종교계와 누리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내년쯤 성전환 수술을 할 예정인 정모(26) 씨는 “나를 포함해 주변 친구들 모두 사회의 밝은 곳으로 나갈 수 있게 돼 모두 기뻐하고 있다”며 “이제 누구나 원하면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성전환자성별변경 법제정 공동연대’의 최현숙 운영위원장은 “사회적 고통과 편견 속에 시달려 왔던 환자들을 위해 사법부가 전향적 판결을 내린 것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창영 신부는 “이미 성전환한 사람들에 대해 배려할 필요는 있지만 쉽게 자기 성을 포기할까 봐 우려된다”면서 “특히 청소년들이 성을 사회적 선택사항으로 인식할 경우 큰 혼란이 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고려대 조성택(불교철학) 교수는 “불교에서 성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것으로 본다”면서 “아무나 성전환을 선택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윤정국 문화전문기자 jk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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