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참사]무면허 경비업체 간부가 “門열라” 지시

  • 입력 2005년 10월 5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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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이라도…” 애타는 유가족경북 상주시 시민운동장 압사사고의 희생자 유가족이 4일 상주시 관계자들과 함께 사고 현장을 찾아 유류품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상주=박영대 기자
“흔적이라도…” 애타는 유가족
경북 상주시 시민운동장 압사사고의 희생자 유가족이 4일 상주시 관계자들과 함께 사고 현장을 찾아 유류품이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상주=박영대 기자
경북 상주시 시민운동장 압사사고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본격화됐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이 사고를 둘러싼 ‘뒷거래’ 의혹과 사고현장인 직3문 개방 경위, 현장 안전 대책 미비점 등이 수사에서 밝혀내야 할 핵심사항들이다.

▽황당한 계약=국제문화진흥협회는 상주시로부터 자전거축제 개막식과 자전거의 밤, 평양연극단 공연, 퍼포먼스 공연, MBC 가요콘서트 등 5개 행사 비용으로 1억 원을 받았다. 협회 측은 가요콘서트 제작비로만 MBC에 1억3000만 원을 지급하고 경비용역업체에 2000만 원을 주기로 했다.

상주시 관계자는 “협회 측이 터무니없이 낮은 금액을 제시해 행사가 부실해질 것을 우려해 협회 측과의 계약을 만류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걱정은 현실로 나타났다. 협회는 20여 업체로부터 음식물을 납품받고 비용을 지급할 수 없을 정도로 재정난에 시달렸으며 경비용역업체에도 대금을 제때 지급하지 않아 행사 통제인원이 대폭 줄었다.

이 때문에 상주시와 협회 간에 이면계약이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협회 관계자는 “협회 고위직으로부터 다음 달 처음 열리는 상주곶감축제와 내년 지방선거 이벤트 사업을 상주시가 협회에 몰아주기로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부적격 업체=협회는 비영리단체여서 축제 행사를 대행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협회는 7월 상주시에 행사계획서를 제출하기에 앞서 6월 20일 협회 부회장인 황모(41) 씨가 대주주로 참여한 ‘유닉스커뮤니케이션’이란 이벤트 회사를 설립해 공연 대행 업무를 이 회사에 위임했다. 또 경비용역업체 ㈜강한경호는 세금을 내지 않아 면허가 취소된 업체였다.

▽직3문 출입문 개방=경비용역업체의 현장 책임자인 이모(38) 씨는 사고가 난 직3문을 개방하도록 시민운동장 직원에게 지시했다. 이 문 바닥은 경사가 20∼30도로 심하고 경사면에 얕은 턱까지 있어 사고 위험이 높은 곳이었다.

협회는 당초 직3문과 직4문을 동시에 개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실제 개방한 곳은 직3문뿐이었다. 이에 대해 협회 관계자는 “직4문 쪽에는 연예인이 이용하는 화장실이 있어 MBC 측에서 통제를 요구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개방 시점도 의문이다. 당초 계획으로는 가수들의 리허설이 모두 끝나는 오후 6시경 문을 열 예정이었다. 하지만 실제 문을 연 시간은 오후 5시 40분경. 이땐 아직 가수들의 리허설이 끝나지 않은 상태였다.

경찰은 날이 어두워지는 데다 사람들이 점점 많이 몰려들고 있어 사고 위험이 높다고 보고 오후 5시 반경 출입문 개방을 요청했으나 리허설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마침내 문이 열리자 한 진행요원이 “앞좌석이 비어 있으니 뛰어오라”고 말한 것을 들었다는 관중도 있어 인원 통제 체계가 완전히 무너졌음을 알 수 있다.

경찰 조사결과 이번 사고의 직접적 원인은 직3문 열쇠를 지닌 상주시 공무원 최모(49) 씨가 문을 여는 순간 앞쪽에 있던 할머니 한 명이 뒷사람에게 떠밀려 넘어진 뒤 사람들이 연쇄적으로 넘어져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력 요청 공방=협회 측은 경찰에 정식 공문을 보낸 적이 없지만 상주시는 경찰에 공문을 보낸 것으로 밝혀졌다. 상주시는 가요콘서트 행사장에 2만여 명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하고 차량통제 및 안전대책에 대한 협조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구체적인 경비지원 요원 수는 명시하지 않았다.

이 사건은 가요콘서트를 맡은 협회 측과 상주시, 상주경찰서 간에 책임 떠넘기기 공방으로 번지고 있다. 책임 소재와 관련한 사실 관계는 결국 경찰청의 감찰과 대구지검의 수사로 가려질 전망이다.

▽수사=상주경찰서는 사고 당시 문을 연 상주시 공무원과 경호업체 관계자들을 상대로 문을 열게 된 경위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경찰은 국제문화진흥협회 관계자와 MBC의 담당 PD, 유닉스커뮤니케이션 관계자, 강한경호 직원 등 20여 명을 집중적으로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또 김근수(金瑾洙·71) 상주시장과 협회 대표 김모(65) 씨 사이에 금전적 거래 등을 통한 특혜 의혹이 있는지도 수사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경찰은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협회와 유닉스커뮤니케이션 사무실을 압수 수색할 방침이다. 협회와 유닉스커뮤니케이션은 같은 건물에 있다.

상주=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자원봉사 나선 단짝 할머니 나란히 참변▼

“살아있을 때 그렇게 사이좋게 지내더니 저세상에도 함께 가다니….”

경북 상주시의 자전거축제 기간에 자원봉사를 하던 60대 할머니 2명이 3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일어난 압사사고로 함께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상주시 부원동에 사는 김경자(63) 노완식(64) 씨는 평소 함께 다니던 사찰의 자원봉사단원으로 활동하다 이번 축제에 자원봉사자로 나섰다.

이들은 축제 마지막 날 시민운동장에서 열리는 MBC ‘가요콘서트’를 보려고 시민운동장 출입문 앞쪽에 섰다가 변을 당했다.

김 씨는 이날이 마침 시아버지 제삿날이어서 공연을 조금만 구경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이웃들은 “평소에 사이좋게 지내던 두 분이 저세상으로 함께 가 안타깝기 그지없다”며 “저세상에서도 의좋게 지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워했다.

황인목(14·상주청리중 1년), 황인규(12·청리면 청동초교 5년) 사촌 형제의 시신이 안치된 상주 적십자병원 영안실에도 친구들의 눈물이 이어졌다.

이날 담임선생님과 함께 숨진 급우를 찾은 학생들은 영안실 앞에서 ‘인목아’ ‘인규야’를 부르며 울먹였다.

손자 2명과 함께 공연장을 찾았으나 자신은 사고를 면한 황 군의 할아버지 황의수(70) 씨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를 어떻게 한꺼번에 잃을 수 있느냐. 하늘이 참으로 무심하다”며 통곡했다.

두 학생이 다니던 학교의 교실에는 주인을 잃은 책상 위에 급우들이 마련한 꽃송이만 외롭게 놓여 있었다.

150여 가구 3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상주시 함창읍 태봉 마을도 슬픔에 휩싸였다.

인기 가수 10여 명이 출연한다는 말에 단체로 공연을 보러 나선 주민 20여 명이 피해를 봤다.

출입문이 열린 뒤 시민들이 서로 밀고 밟히는 가운데 주민 이순임(66·여) 씨가 인파에 깔려 숨졌고, 5명은 타박상 등을 입고 병원으로 실려 갔다.

유족들은 상주문화원에 마련된 합동 분향소를 찾은 정치인들에게 “또 반복된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 되도록 해 달라”고 입을 모았다.

상주=이권효 기자 boriam@donga.com

▼주최업체 보험 미가입… 보상문제 ‘산 넘어 산’▼

경북 상주시와 유가족 사이의 보상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다.

장례비용 지급과 관련해서는 4일 오후 가구당 위로금 100만 원을 포함해 800만 원씩 지급하기로 상주시와 유족 측이 합의했으나 보상금 협의는 검찰과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 이후로 미뤄졌다.

장례일정 역시 유족 사이에 3일장과 5일장 의견이 엇갈리면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이에 따라 일부 유족은 5일 오전 개별적으로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

보상금에 합의하더라도 MBC 가요콘서트 행사 대행을 맡은 국제문화진흥협회가 상해보험에 가입하지 않아 보상재원 마련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상주시는 시 예산을 통해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한 뒤 협회에 구상권을 행사할 계획이지만 협회가 빈털터리에 가까워 111명이나 되는 사상자 보상이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당초 상주시와 협회는 안전사고 발생 시 협회 측이 가입한 보험을 통해 보상토록 협약했다.

한편 상주시와 MBC도 이 행사의 약정서를 작성할 때 대행사의 보험 가입 여부를 확인하지 않은 만큼 공동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족들은 “관련 기관들이 모두 발뺌하기식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유족에 대한 보상은 가장 현실적인 문제인 만큼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 달라”고 주문했다.

상주=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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