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실버취업박람회 서울 코엑스 가보니…

  • 입력 2005년 9월 23일 03시 04분


“전과 없습니까?”

“…….”

“신용불량은 아니죠? 요즘엔 신용불량자들도 이 일 못합니다.”

2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실버취업박람회. 경비용역업체 부스를 찾은 한 60대 노인은 직원의 계속되는 질문에 말없이 고개만 가로저었다.

22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 인도양홀에서 ‘하이서울 2005 실버취업박람회’가 열렸다. 이번 박람회에서는 경비, 운전, 택배, 지하철도우미 등 모두 6200여 개의 일자리와 함께 ‘건강나이’ 측정과 적성검사, 취업훈련 상담 등의 서비스도 제공된다. 권주훈 기자

“친절, 서비스, 봉사…. 오로지 ‘이 아파트는 내 집이다’ 생각하고 일하셔야 해요. 자신 있으세요?”

노인은 경비 일 하는데 무슨 조건이 이렇게 까다로우냐는 듯 “해봐야지”하며 이력서를 건넸다.

서울시 주최로 열린 이날 박람회에는 고령화와 고용 불안이라는 사회 현실을 반영하듯 약 2만 명의 ‘어르신 구직자’들이 몰려 대성황을 이뤘다. 이날 접수된 이력서만 7000장에 이르렀다.

○ “아직 튼튼한데 복지관 다니면 뭐하나”

박진규(82·가명) 씨는 박람회에 오기 위해 손수 컴퓨터로 이력서를 작성했다. 증명사진도 디지털카메라로 찍어 준비했다.

그는 “전에도 이력서를 수십 장 냈지만 번번이 나이가 많아 돌아가야만 했다”며 “일주일에 두세 번 하면서 용돈 벌 일을 찾고 있다”고 했다.

이들에게는 당장 월급보다도 ‘아직도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더 중요했다.

윤모(70) 씨는 생활비를 매월 자녀들이 댄다. 하지만 그는 지난 1년간 컴퓨터를 배워 이력서에 한 줄을 더 보탤 수 있게 된 것이 흐뭇하다. 윤 씨는 “아직 몸도 튼튼한데 복지관만 다녀봤자 뭐 하겠느냐”며 상담 부스를 향했다.

중학교나 고등학교 졸업자들이 대부분이지만 대졸 이상 고학력자나 전직이 ‘빵빵한’ 사람도 적지 않았다.

○ 틈새 직종도 인기

“옆을 보시고…자, 웃어보세요.”

가장 큰 인기를 끌었던 곳은 광고모델 채용 부스.

채용 인원은 고작 20여 명이지만 이날 하루만 수백 명의 노인이 줄을 지어 ‘카메라 테스트’를 받았다. 영화나 드라마 엑스트라를 뽑는 곳에도 하루 내내 구직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전에는 생계형 취업자가 대부분이었다.

번역·통역사를 모집하는 부스도 전직 교수나 교사, 귀국한 해외 교포 등 구직자의 끊임없는 발걸음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주최 측은 이날 박람회에서 ‘국가시험감독원’과 ‘장례도우미’ ‘할인매장관리원’ 등 기존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틈새 직종을 선보였다.

○ 원하는 직업에 맞춰 이력서 준비해야

박람회에 나온 업체 상담자들은 “원하는 직종에 따라 이력서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서울종합고용안정센터 정두영 상담사는 “이력서에는 다녔던 회사 이름만 적지 말고 그 회사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희망 직종이 무엇인지 등을 적는 것이 구직에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실버취업박람회 박준기(46·여) 사무국장은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고 적극적 자세로 임해야 한다”며 “업체에 대한 정보를 사전에 꼼꼼히 살펴보길 권장한다”고 말했다.

23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박람회는 424개 업체가 참가해 공공부문을 포함해 모두 6200여 개의 일자리를 제공할 예정이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