뺨 때린 선임병에 앙심…‘제초제 보리차’는 이병 소행

  • 입력 2005년 8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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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인천 강화군 동검도 모 해군부대에서 발생한 ‘제초제 보리차’ 사건은 선임병의 구타에 앙심을 품은 이모(20) 이병이 저지른 것으로 밝혀졌다.

또 당시 제초제가 든 보리차를 마신 것으로 알려진 조모(19) 이병은 실제론 자신이 안전한 물을 마신 사실을 뒤늦게 알고도 이를 숨긴 것으로 나타났다.

해군은 12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이 이병을 상해미수죄로 구속 수사 중이며, 조 이병을 불구속 수사 중이라고 밝혔다. 해군은 이 이병을 폭행한 선임병 4명도 처벌키로 했다.

▽사건 재구성=6월 28일 오전 6시 10분. 이 이병은 국기 게양식에 늦게 나갔다가 선임병인 L 일병에게 뺨을 세 차례 얻어맞았다. 이 이병은 6월 8일 부대 전입 이후 20일 동안 선임병들로부터 “행동이 굼뜨다”는 이유로 수시로 구타를 당해 왔다.

그는 의무실에서 맹독성 제초제 그라목손과 알라유제를 가지고 나와 식당의 밥통, 물통, 냉장고 안 김치통 등 5군데에 뿌렸다. 그러나 이로 인해 선량한 부대원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을 우려해 물통의 오염된 식수를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김모 중사에게 보고했다.

김 중사는 김치통, 밥솥 등에서도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확인하고 모든 식기를 세척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조 이병이 오전 6시경 보리차를 두 잔 마신 사실을 파악했다.

주임원사는 조 이병이 구토를 하도록 한약재가 섞인 물 1L를 마시게 했다. 조 이병은 약물검사에서 양성반응이 나와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그러나 그가 마신 물은 안전한 물이었다. 해군은 한약재 성분이 양성반응을 일으켰거나 조 이병이 오염된 식기를 세척한 손을 입속에 넣고 구토를 시도하는 바람에 양성반응이 나온 것으로 보고 있다.

조 이병은 당초 제초제가 든 보리차를 마셨다고 말했으나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안전한 물을 마셨다는 것을 알고도 겁이 나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입을 닫았다. 그는 병원 정밀검사에서 별문제가 없어 이달 5일 퇴원했다.

해군은 당초 유력한 용의자로 보았던 조 이병이 퇴원한 뒤 본격 수사에 착수해 거짓말탐지기와 뇌파검사를 통해 용의자 8명을 조사한 결과 이 이병으로부터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자칫 대형사건 될 뻔=이번 사건은 이 이병이 고참의 폭행에 앙심을 품고 저지른 것이라는 점에서 경기 연천군 최전방 감시소초(GP)의 총기난사 사건과 유사하다.

다행히 겁이 난 이 이병의 사전 신고로 별다른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 수십 명의 장병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제초제 그라목손과 알라유제는 독성이 매우 강해 소량이 섞인 물 1잔만으로도 사망에 이를 수 있다.

해군은 독극물 보관 관리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한편 감독을 강화하고 선임병의 구타와 가혹행위에 대해서는 재발 방지대책을 수립하겠다고 밝혔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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