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당시 해양경찰대 소속 경비정인 200t급 ‘견우정’ 대원이었던 안영진(80·충북 보은군 수한면), 박래봉(79·부산 동래구 명장2동), 김창호(77·제주 북제주군 조천읍) 씨 등은 이미 사망한 주시완 씨를 포함해 4명 명의로 최근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이 같은 사실을 진정했다.
당시 계급이 경사였던 안 씨와 순경이었던 나머지 3명은 그해 12월 25일 오전 4시경 해상 경비근무 중 야음을 틈타 불법 조업하는 중국 어선을 발견, 이 어선에 올라탄 후 제압했다. 그러나 갑자기 중국어선 7, 8척이 몰려와 격투 끝에 중국으로 끌려갔다는 것.
이들은 1967년 4월 12년 가까운 형기를 마치고 피골이 상접한 몰골로 풀려나 홍콩의 한국대사관을 통해 귀국했다.
이승만(李承晩) 정부는 이들이 피랍된 뒤 1961년 11월까지 가족들에게 임금을 지급했으나 박정희(朴正熙) 정부하에서는 이마저도 중단돼 어려운 생활을 이어 왔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주 씨는 옥살이에서 얻은 지병으로 지난해 8월 81세로 사망했으며, 박 씨는 당시 고문으로 청각을 잃었고 안 씨와 김 씨도 모두 심각한 후유증을 앓아 매일 병원 신세를 지다시피 하고 있다는 것.
제주=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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