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전쟁]학부모들 “3년간 대입시험 12번 치르는셈”

  • 입력 2005년 3월 23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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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학년도 대입전형에서 내신이 중요해짐에 따라 체육 음악 등 예체능 과외를 받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20일 서울 대치동 미도아파트 입구 근린 공원에서 학생들이 학원 강사로부터 줄넘기와 공던지기 등 체육 과외를 받고 있다.원대연 기자
2008학년도 대입전형에서 내신이 중요해짐에 따라 체육 음악 등 예체능 과외를 받는 학생들도 늘고 있다. 20일 서울 대치동 미도아파트 입구 근린 공원에서 학생들이 학원 강사로부터 줄넘기와 공던지기 등 체육 과외를 받고 있다.원대연 기자
‘중고교는 지금 내신 전쟁 중.’

2008학년도 대입제도에 따라 현재 고교 1학년부터 학교생활기록부 성적이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바뀌고 9등급제가 도입되면서 고교생과 학부모들이 ‘내신 공포’에 떨고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등 학원 밀집 지역에선 이런 불안 심리를 겨냥해 ‘내신 관리’ 학원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중간고사가 한 달가량 남았지만 학원과 학생들은 벌써 시험 준비에 전력을 쏟고 있다.

▽학부모 학교 방문 급증=고교 신입생 학부모 설명회에 참석하는 학부모 수가 크게 늘었다. 새 대입제도와 학교의 내신 관리 방안에 대한 높은 관심 때문이다.

서울 단국대사범대부속고 박용선 교장 직무대리는 “1학년이 460명인데 330여 명의 학부모가 참석해 앉을 자리가 없었을 정도”라며 “지난해보다 참석자 수도 크게 늘고 질문 내용도 달라졌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은 “내신 관리가 공정하게 되느냐” “동점자가 많으면 내신 1등급을 못 받을 수 있다는데 무슨 말이냐”는 등 구체적으로 물어 교사들도 당황했다는 것.

이 학교는 내신 성적 조작 사건의 영향을 의식해 시험 출제와 성적 관리를 엄격하게 하기 위해 이달에만 교사 연수를 세 차례 실시했다. 수행평가를 놓고 시비가 일지 않도록 기계적인 평가가 가능하게 하고, 중간·기말고사 출제나 채점 때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고1 아들을 둔 한 학부모는 “오후 2시에 학교에 가서 오후 7시 반까지 기다렸다가 담임교사와 겨우 면담을 했다”며 “다른 학부모들의 관심이 대단해 놀랐다”고 말했다.

강남 학부모들 사이엔 “고교 3년간 중간·기말고사를 합쳐 12번 대입을 치르는 각오로 뒷바라지해야 한다”는 말이 돌고 있다.

▽학원 “학교 정보 수집하라”=학생과 학부모가 내신에 온 신경을 쓰자 학원들도 주변 학교별로 ‘내신 관리반’을 만들고, 학생들에게 수업 필기 내용, 인쇄물, 부교재 등을 가져오게 해 교사의 출제 성향과 강조점 등을 분석하고 있다.

K학원은 인근 8개 고교별 내신 특강반을 운영하고 오후 11시 이후에는 1 대 1 수업도 해주고 있다.

서울 H고 1학년 이모(17) 군은 “중3 때까지 영어 수학 학원만 다녔는데 지금은 사회 및 과학탐구 과목도 수강한다”며 “전 과목 내신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치동 M학원은 4월 말 중간고사에 대비해 벌써 내신 지도에 들어갔다. 예년에는 시험 2주 전 간단히 정리해 주는 수준이었지만 내신이 상대평가로 전환된 이후에는 시험 한 달 전부터 ‘시험 준비’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한 학원 강사는 “인근 S여고의 사회 교사는 수능식, Y고는 교과서 중심의 단답형 문제를 많이 낼 것 같다”며 “예상 문제집을 만들어 집중적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의 C학원 원장은 “중간고사 결과에 따라 학원들의 명성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총력전을 펼 수밖에 없다”며 “중간고사 이후 전학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오후 10시 이후 강의를 시작하는 학원들이 많고 학생들이 몰릴 경우 오전 1시에 수업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렇기 때문에 학원 강의가 시작하고 끝나는 시간대에 몰려나오는 승용차들로 ‘대치동 러시아워’가 있을 정도이며, 야간수업을 하는 학생들과 대기하는 학부모들을 위해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

▽예체능 과외도=주요 과목 외에 음악 미술 체육 과외도 성행하고 있다.

서울 경기고 1학년 백모(17) 군은 “내신이 중요해져 미술 음악도 소홀히 할 수 없어 미술학원을 다녔다”며 “미술학원을 다닌 효과가 있으면 여름방학 때도 계속 다닐 계획”이라고 말했다.

주말이면 아파트 단지 인근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에는 체육 과외를 받는 초중고교생들이 눈에 많이 띈다. 보통 같은 학교나 동네 학생 10여 명씩 그룹을 만들어 토일요일에 1시간 반 동안 체육 과외를 해 주고 월 4만∼5만 원을 받는다.

서울 봉은중 3학년 이모(16) 양은 “지난해 일요일 오전에 학교 운동장에서 줄넘기 체조 등 체육 과외를 한 덕분에 체육 성적이 10점이나 올랐다”며 “공부뿐 아니라 예체능도 완벽해야 하기 때문에 요즘은 쉬는 날이 하루도 없다”고 말했다.


이나연 기자 larosa@donga.com

노시용 기자 syr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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