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만에 졸업하는 기분”장상前이화여대총장 정년퇴임

  • 입력 2005년 3월 10일 1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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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승 기자
이종승 기자
“진실이 진실대로 수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사회를 배우기 위해 비싼 대가를 치른 기분이었습니다.”

10일 이화여대에서 정년퇴임식을 갖고 교수직을 그만둔 장상(張裳) 전 이화여대 총장은 사상 첫 여성 국무총리로 지명됐다가 낙마했을 당시를 회고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총리 지명도 갑작스러웠지만 바깥에서 그렇게도 나에게 돌을 던질 줄은 몰랐다”며 “비록 폭풍 같은 시절이긴 했어도 나의 경험이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1939년 평북 용천에서 태어난 그는 1947년 월남했으며 숙명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화여대 수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1977년 프린스턴 신학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상 첫 여성 국무총리 지명자이자 첫 이화여대 기혼총장인 그는 직함에 항상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다녔다.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 회장과 헌법재판소 및 한국여성유권자연맹 자문위원 등으로 다양한 사회활동을 해 온 그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특별수행원으로 방북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7월 부동산 투기와 아들의 국적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국무총리 서리로 임명됐다가 21일 만에 낙마해 인생의 가장 큰 시련을 겪었다.

장 전 총장은 “인생을 살다보면 중간에 넘어질 때가 있지만 왜 넘어졌는지를 배우고 넘어가면 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며 “사회에 흔적을 남기려면 한 가지 일에 몰입하고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후학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그는 또 “거의 반세기 만에 드디어 대학을 졸업하는 기분”이라며 “지금까지 가르침을 멈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 만큼 앞으로도 공부하고 생각하고 글 쓰는 일에 전념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장 전 총장은 청문회 당시 의혹이 제기됐던 경기 양주시의 4만 평 토지를 한 사회복지재단에 기증한 데 이어 이화여대 측에 약정한 5000만 원의 장학금도 완납했다.

그는 퇴임식 답사에서 “우리 사회는 지금까지 너무 잘사는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바르게 사는 문제는 등한시해 왔다”며 “양심을 저버리는 부정과 불신 등 이 사회의 어두운 모습을 극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라고 말했다.

이날 정년퇴임식에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와 박영식(朴煐植) 광운대 총장을 포함해 이 대학 관계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그는 이날 퇴임식에서 1등급 훈장인 청조근정훈장을 정부로부터 받았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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