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고승철 칼럼]지식생태계가 붕괴된다

  • 입력 2004년 12월 28일 17시 44분


“왜 ‘불문’과를 지원했지?”

“취직시험 지원 자격에 전공 ‘불문’이라고 하잖아요.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아서….”

불문과 학생들 사이에서 나도는 오래된 우스개다. 사회학과 학생들은 “사회(司會) 보는 MC 되는 거 가르치는 학과 아닌가요?”라며 한바탕 웃곤 했다.

요즘 대학가에서는 이런 농담을 꺼낼 분위기가 아니다. 취업난 탓에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학과의 재학생들은 걱정이 태산 같다. 교수들도 어깨가 축 늘어져 있다. 특히 ‘문사철’(문학, 사학, 철학) 분야의 위기의식은 심각하다. 학부, 대학원 할 것 없이 학생 정원을 채우기 힘들다.

▼고사 위기에 몰린 인문학과▼

인기 학과의 사정은 다르다. 취업이 잘 되는 경영학과나 고시에 유리한 법학과의 수업은 대부분이 대형 강의실에서 이뤄진다. 수백 명이 꽉 찬다. 교수는 마이크를 잡지 않을 수 없다. 강의 환경이 무척 나쁘다.

대학에서의 배움은 교수의 인격, 체취 등 ‘아우라(aura)’를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육성 대신 마이크를 쓰는 곳에서는 그걸 느끼기 어렵다. 단순히 지식만을 습득하자면 책으로 공부하든지 온라인 강의가 효율적이지 왜 대면(對面) 강의를 듣겠는가.

비인기 학과에선 서너 명이 옹기종기 앉아 교수에게서 자상한 가르침을 받는다. 강의 환경이 좋다. 그런데도 학생이 몰리지 않으니 이 역설(逆說)을 어찌 설명하랴.

외국의 명문대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한 ‘문사철’ 박사 가운데 나이 마흔을 넘어서도 시간강사 신세를 면치 못하는 인재들이 수두룩하다. 일부는 고교생에게 논술과외를 하며 어렵사리 생계를 꾸려간다. 출판계 불황 때문에 싸구려 번역 일감도 뜸하다. 국내 박사들은 더욱 찬밥 신세다.

이들의 눈에 비친 사회는 온통 모순 덩어리다.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사람 몸값이 매겨지는 세상이 증오스럽기까지 하리라. 세계화와 시장경제를 좇는 신자유주의에 대해 독설을 퍼붓지 않을 수 없는 심경이다. ‘가방 끈’이 짧은 친구들은 ‘386 세대의 특권’을 향유하며 금배지를 달거나 그럴듯한 공직에 낙하산 타고 갔지만 이들은 박사학위란 게 오히려 애물단지가 돼 전전긍긍하고 있다.

‘인문학의 위기’란 말은 이미 진부할 만큼 알려진 지 오래 됐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 정도가 유독 심하다. 지식 생태계가 허물어질 지경이다. 자연 생태계에서는 크고 작은 동식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환경오염이나 기상이변으로 자연생태계가 파괴되면 인간의 삶의 터전도 위협을 받는다.

단기적인 실용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고구(考究)하는 인문학이 소외받고 쇠퇴한다면 삶의 질이 떨어질 것임은 분명하다. 두뇌 없이 몸뚱이만으로는 살 수 없지 않은가.

장기적으로는 인문학의 실용성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문화 상품’ 사례를 굳이 들추지 않아도 말이다. 소비자는 인간인데 기업이 인간의 심리와 행태를 모르고 어떻게 마케팅을 할 수 있으랴. 인문학의 발전 없이는 현대인의 복합적인 삶을 규명하기 어렵고 역사 속에 녹아 있는 지혜를 발굴할 수도 없다. 중국의 저술가 위추위(余秋雨)는 “문화의 뒷받침 없는 경제발전은 야만(野蠻)”이라면서 “중국의 문화부흥을 위한다는 신념으로 책을 쓴다”고 역설한 바 있다.

▼文史哲쇠퇴땐 삶의 질 후퇴▼

인문학과 경제 사이의 화합이 필요하기도 하다. 인문학자들은 경제활동을 속물주의자들의 탐욕스러운 행위라 사갈시(蛇蝎視)하지 말고 이를 인문학의 너른 가슴으로 품어야 한다.

작은 제안 하나…. 기업도 신입사원을 뽑을 때 ‘문사철’ 전공자들을 홀대하지 말라는 것. 새해 소망 하나를 덧붙이자면 ‘문사철’ 연구소가 여럿 세워져 인문학의 르네상스를 주도하고 대학 관련학과에도 활기가 넘치기를….

고승철 편집국 부국장 che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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