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 유영철, 유가족에 참회편지

  • 입력 2004년 9월 21일 01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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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쇄살인범 유영철씨(34)가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편지를 쓴 사실이 20일 확인됐다.

자신에 대한 선처를 호소한 피해자 유족의 탄원서를 읽은 유씨가 검찰 조사를 받던 8월 초 구치소에서 써서 재판부에 전달한 답장이 이날 변호사를 통해 공개된 것.

유씨는 자신의 흉기에 노모와 부인, 아들 등 일가족을 잃고도 “죄는 밉지만 사형만은 말아 달라”는 내용의 탄원서를 경찰에 보냈던 ‘서울 구기동 사건’ 피해 유족 고모씨(65)에게 보내 달라며 8월 초 A4용지 2장 분량의 편지를 썼다.

유씨는 “어르신의 화목했던 가정을 한순간 모두 앗아갔던 유영철입니다”라고 말을 꺼냈다. 그는 이어 “이렇게 글을 올리는 것 자체가 염치없는 줄 알지만 어르신께서 제게 보내 주신 글을 보고 너무 감동이 돼서 참회하는 심정으로 몇 자 적게 됐다”고 했다.

유씨는 “용서를 구하고자 이렇게 용기를 낸 것이 아니다”며 “저 같은 인간을 벌하지 말라 하신 어르신의 간곡함을 읽고 이 인간이 얼마나 못난 짓을 했는지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유씨는 “다음 생엔 성직자로 태어나 봉사만 하는 생을 살고 싶다”면서 “검거 당시 기회가 여의치 않아 많은 유가족들에게 사죄를 드리지 못했으나 그분들께 어르신이 제 심정을 (대신) 전해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용우기자 woogija@donga.com

유영철, 피해유족에 보내는 편지 전문

저는 어르신의 화목했던 가정을 한순간 모두 앗아갔던 유영철입니다.

제가 이렇게 어르신께 글을 올리는 거 자체가 너무나 염치가 없는 줄 알지만 어르신께서 저에게 보내주신 글을 보고 너무나 감동이 되어 참회하는 심정으로 몇자 적게 되었습니다.

어르신, 지금에 와서 제가 어떤 말씀으로 사죄를 드려도 어르신의 마음에 위로가 안돼(되)실거라 믿습니다. 전 용서를 구하고자 이렇게 용기를 낸 것은 아닙니다. 다만 저 같은 인간을 벌하지 말라 하신 어르신의 간곡함을 읽고 이 인간이 얼마나 못난 짓을 했는지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어렵게 자라 부유층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과 한 여성의 배신감을 이렇게까지 표출하지 못했던 정말 나약하고 못나디 못난 인간 이하의 인간이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어르신, 저도 한때 따뜻한 가정이 있었고 짧지만 자식의 애틋함을 피부로 느끼며 행복했다고 할 수 있었던 나날도 있었습니다. 소박한 꿈을 향해 살려고 발버둥도 쳐봤지만 내 의지와 다른 수렁의 길에 접어들기를 반복하다 보니…(중략)…어느 순간부터 느꼈습니다. 희망이란 참 중요한 것 같더군요.

희망없는 나날은 결국 그 끝이 밝지 않다는 걸 매번 느끼면서도 행복과 희망을 쫓아가기만 했지 그걸 지키려 하지 않았던 게 제 인생 실패의 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르신, 여긴 상처받은 이들이 많은 곳입니다.

무의미한 나날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많은 수용자들에게 인간이 떠날 때 떠나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미담어린 모습 보이고 가겠습니다.

다음 생엔 성직자로 태어나 봉사만 하는 생을 살고 싶군요. 내가 아닌 남을 위해 사는 삶도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하다는 걸 많이 느끼곤 했었습니다.

저처럼 보이지않는 외롭고 소외된 자들이 많습니다. 저와 같은 인간이 나오지 않도록 그분들께 관심과 희망의 시간을 많은 분들이 조금씩 나눠줬으면 합니다.

제가 검거 당시 기회가 여의치 않아 많은 유가족들에게 사죄를 드리지 못한 점 정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어르신께서 그분들께 어던 방법으로든 저의 심정을 전하여 주셨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며 다시 한번 진심으로 머리숙여 깊이 사죄드립니다.

어르신 죄송합니다.

못난인간 유영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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