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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7월 19일 01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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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 살인사건 유족=이들은 “지금까지 경찰은 뭐 했느냐”고 원망하면서 “그동안의 고통을 말로는 표현 못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일부 유족들은 경찰이 면식범의 범행으로 수사의 방향을 잡는 바람에 수시로 경찰서에 불려가는 등 많은 고초를 겪었으며, 남은 가족들마저 사실상 ‘남남’이 된 경우도 있었다.
“뭐라 말하기 어려운 심정입니다. 아버님 산소에 가야겠습니다.”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혜화동 자택에서 살해된 김모씨(87) 부부의 맏며느리 오모씨는 18일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그동안 범인이 잡히지 않아 미제사건이 되는 것 아닌가 불안했다”고 말했다.
사건 발생 후 오씨 가족은 30여년간 살아 오던 혜화동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했다. 고인의 다른 자녀들 역시 모두 혜화동에서 멀리 떠났다.
오씨는 “어제 오후 늦게 연락을 받고 혜화동에 가서 형사들이 데리고 온 범인을 봤다”며 “연락 받았을 때 반신반의했지만 범행사실을 정확하게 거리낌 없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며 범인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에서 마주쳤을 때 범인은 고개를 숙이지 않았고 오히려 살기가 비쳤다”며 “우리(가족들)를 째려보던 눈빛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독서와 산책을 즐기며 남을 의심할 줄 모르고 조용히 살던 시부모님이 그런 일을 당했다”며 “사건 이후 국가나 사회를 믿지 않게 됐다”고 털어놓는 어조에는 원망이 서려 있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가족들이 혜화동 집 뒤쪽 담이 낮은 데다 평소 좀도둑이 몇 번 드나든 적이 있어 모르는 사람의 범행일 것이라 주장했지만 통하지 않았다”며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 불려가 조사받은 적도 있다”고 힘든 기억을 털어 놓았다.
그는 인터뷰 내내 충격과 슬픔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으나 “범인은 극형에 처해야 한다. 사회에 다시 나와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피해 여성 유족=한편 이날 오후 기동수사대에서 참고인 조사를 받은 여성 피해자들의 가족과 동료들은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며 충격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피해자 김모씨(25·여)의 어머니 박모씨(47)는 딸의 시신 사진을 확인한 뒤 “다리 모양을 보니 딸이 맞다”며 “믿을 수가 없다”며 오열했다. 피해자 임모씨(27·여)의 지인인 이모씨(34)는 조사과정 내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죽이다니…”라는 말을 되뇌었다.
전지원기자 podrag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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