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수 교수가 청와대에 보낸 진정서 전문

  • 입력 2004년 7월 1일 11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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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탁땐 패가망신 시킨다더니…"

며칠전 본인이 겪은 이 일을 도대체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 끝에 이곳 청와대 신문고를 통해 비공개로 알려드리고 청와대측의 반응을 들어본 뒤에 필요하다면 대응방안을 찾아봐야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이 글을 올립니다.

본인은 20여년간 성균관대 영문과 교수로 재직해 오고 있었으며 지난 2001년도에 예술학부 연기예술학 전공이 신설되면서 원래 전공인 이 학과로 적을 옮겨 현재 주임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현재 내년에 부임할 연극 및 문화이론 전공의 신임교수 공개채용을 위한 심사 절차를 진행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이른 아침에 평소 업무관계로 몇차례 만난 적이 있던 오지철 문화관광부 차관이 집으로 전화를 해서 만나자고 해서 이튿날 삼청동의 커피숍에서 만났습니다. 용건인즉 이번 성균관대 교수 공개채용에 지원한 불문학박사 아무개씨를 잘 봐달라는 인사청탁이었습니다.

참여정부가 들어선 직후 노대통령의 제 일성(一聲)은 “인사청탁은 결단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개혁의 첫 단추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욱이 노 후보의 지지자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환영해 마지 않았으며 그 약속이 반드시 지켜질 것으로 굳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참여정부 출범 1년여가 지난 지금 과연 그 약속은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인가요? 제가 속한 문화계에서는 정부 출범 직후부터 거의 모든 문화예술 관련 단체장의 인사를 특정 계열의 예술인들이 싹쓸이한다는 여론이 비등했고 이에 대한 문화계의 반발이 언론기사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기까지 했습니다.

최근에는 예술의 전당 사장 자리를 놓고도 세간에는 정동영계와 신기남계와 이창동계가 힘겨루기를 하다가 마침내 정동영계가 차지했다는 식의 소문이 무성합니다. 본인은 물론 이런 소문들의 진위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믿고 싶지도 않으며 어느만큼 사실에 기초했다 하더라도 지나치게 부풀려진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며칠전 오지철 차관을 만난 후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본인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겠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오 차관을 만난 다음날 본인은 자청해서 오 차관을 통해 아무개씨를 만났습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에게 물었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오 차관으로 하여금 내게 이런 청탁을 하게 되었는가고. 그분은 오 차관과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차기 문화부장관으로 내정되어 있는 정동채 의원에게 부탁을 했고 정 의원은 본인을 몇 번 만난 적이 있는 오 차관을 시켜서 본인에게 이같은 청탁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정 의원에게는 누가 청탁을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의 대답은 평소 정 의원과 교분이 두터운 자기 남편인 서프라이즈의 대표 서영석씨가 청탁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상이 본인이 며칠 전 겪은 일의 전말입니다.

본인은 위에 거명한 어느 누구와도 친분이 없습니다. 더구나 성균관대학교는 정부 여당의 산하기관도 아닙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스스럼없이 청탁을 해대는 판이면 그들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기관, 단체의 인사는 어떻게 주물러 왔을까를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정동채 의원, 서영석씨 같은 분의 위상은 굳이 설명이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그분들이 이럴진대 그 아래로 내려가면 어떠할까는 불을 보듯 훤하지 않습니까?

물론 참여정부 안에는 강직하고 정직한 분들이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그런 분들의 빛이 가려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본인은 이 글을 쓰기에 앞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본인과 몇차례의 업무상 만남밖에 없었던 오지철 차관에 대한 배려 때문이었습니다. 심부름을 한 죄밖에 없는 그분에게 돌아갈 불이익을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편치 못하지만 이번 일을 그냥 덮고 넘어갈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여 용기를 내어 이 글을 씁니다.

본인의 글을 읽고 청와대에서 숙고하신 뒤에 적절한 회신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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