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박종희/EBS 수능강의, 공교육 망칠수도

  • 입력 2004년 5월 31일 18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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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당국은 교육방송(EBS) 대학수학능력시험 강의와 교재 내용에서 대입수능시험 문제를 출제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여기에는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다.

이 방침대로라면 현장교사는 EBS 방송교재로 수업을 하고 나아가 EBS 방송강의의 진행요원이 돼야 하며 학생들은 학교수업보다 EBS 방송강의에 더 집착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학생들은 학교와 교사를 더 불신하게 되고 공교육은 사교육의 들러리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공교육이 더 망가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EBS 수능방송의 시청률을 높여 사교육비를 줄이겠다는 교육당국의 노력은 십분 이해하지만 EBS 방송강의와 수능시험과의 연계성을 되풀이해서 강조하는 처사는 학생들에게 과도한 학습부담을 주는 결과를 낳는다.

EBS 수능방송 설명회에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한 실무자는 “EBS 수능강의는 하루에 3시간 정도 시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 EBS에서 제공하는 초·중·고급의 수능강의를 전부 시청하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강의에서 어떤 문제가 나올지 모르니 불안한 학생들은 EBS의 모든 강의를 시청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EBS 방송강의 시청에 그 정도의 시간을 도저히 낼 수가 없다. 정규 및 보충수업 8∼9시간, 야간자율학습 3∼4시간, 예습과 복습, 수행평가 과제까지 하다보면 정말로 방송강의를 들을 시간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EBS 방송강의가 수능시험에 난다고 하니 무리해서라도 방송 강의를 들을 것이다. 그 대신 수면시간을 줄여야 한다. 부족한 잠은 학교 정규수업 시간에 메울 것이다. ‘부실한 공교육’에 ‘잠자는 공교육’이라는 오명이 더해질까 두렵다.

박종희 서울 둔촌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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