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영 투신자살]고위층 자살… 책임회피-명예회복 양면

  • 입력 2004년 4월 29일 18시 45분


정재계 고위층 인사들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의학적으로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지난해 8월 정몽헌(鄭夢憲) 현대아산이사회 회장을 시작으로 올해 들어 안상영(安相英) 부산시장, 남상국(南相國) 전 대우건설 사장, 김인곤(金仁坤) 광주대 이사장 등이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정신의학자들은 개인차를 인정하면서도 일반적으로 “불만과 책임 회피의 극단적 표현이면서 동시에 명예회복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라고 진단한다.

고위층 인사들은 엄청난 업무량에 시달릴 뿐 아니라 모든 사안에 대해 최종적인 의사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런 의사결정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함은 물론이다.

보통 사람들은 이들의 지위와 재력을 부러워할 수도 있겠지만 당사자는 결과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힘겹고 고독하다. ‘파국’의 불씨가 항상 존재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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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평소 존경받는 지위에 있던 사람이 각종 비리 사건에 연루됐을 경우 심리적 압박감이 커지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재판이나 신문 과정에서 평소 경험하지 못했던 모멸감이나 수치심을 느끼게 되면 충동적 결정을 할 확률은 더욱 커진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자’라는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구치소에서 목을 매 숨진 안 시장 외에 나머지 4명이 모두 투신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은 이들의 자살 결정이 막다른 골목에서 충동적으로 이뤄졌음을 시사하고 있다.

인제대 의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우종민 교수는 “보통 사람처럼 쉽게 불만을 터뜨릴 수도, 사표를 내던질 수도 없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막다른 골목을 만나면 모든 것이 무너졌다는 생각으로 자살을 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 교수는 이어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외국처럼 저명인사나 최고경영자(CEO)들이 정기적으로 정신 상담을 받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김상훈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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