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이천사]<10>성교육전문가 김현주씨

  • 입력 2004년 3월 5일 18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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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소녀들의 ‘엄마’인 김현주씨(44)가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딸부잣집’에서 손을 잡아주며 ‘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있다.   -원대연기자
비행소녀들의 ‘엄마’인 김현주씨(44)가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딸부잣집’에서 손을 잡아주며 ‘딸’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있다. -원대연기자
‘엄마 냄새를 나누어 주는 이웃.’

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딸부잣집’. 6명의 소녀가 ‘엄마’와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이곳은 한때 잘못으로 비행을 저지른 20세 이하의 여성청소년 10여명이 함께 사는 ‘그룹 홈’으로 정식명칭은 한국갱생보호공단 서울지부 송파출장소. 여기서 성교육전문가 김현주씨(44)는 소녀들의 ‘엄마’로 통한다. 김씨는 집 근처에 있는 이곳을 하루에 서너 차례씩 찾는다.

그러나 가정의 보호를 받아보지 못한 거칠고 메마른 소녀들의 엄마 노릇을 하기란 녹록지 않은 일.

김씨는 자신의 역할이 “보통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2000년 설립 당시부터 ‘내가 마땅히 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껏 무보수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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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말 신고 다녀라”는 시시콜콜한 잔소리에서부터 임신이나 성 관련 질병처럼 10대 소녀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문제까지 김씨의 몫이다. 처음에는 말을 건네도 흘겨보기만 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내밀한 고민까지 그에게 털어놓는다.

“어느 날 한 아이가 와서 ‘엄마 냄새가 난다’고 해요. 친아버지에 의해 보육원에 버려지고, 자신을 귀찮아만 했던 엄마 때문에 상처투성이인 아이인데도 엄마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을 버리지 못하더라고요.”

대학 졸업 후 전업주부로 살던 김씨는 1988년 우연히 피임법 강의를 접하면서 성교육에 눈을 뜨게 됐다. 1999년 서울시에서 주관하는 성교육 강사 과정을 마친 뒤 ‘내일여성센터’에서 전화 성상담을 하면서 청소년 성문제가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됐다.

지금은 ‘천주교 성폭력 상담소’, ‘한빛대안센터 길거리상담소’ 등에서 위기에 처한 아이들을 만나느라 쉴 새가 없다. 집에서 쉴 때 상담전화라도 걸려오면 김씨의 두 아들은 “엄마! 딸들한테서 전화 왔어요”라며 슬며시 자리를 비켜준다.

김씨는 자신이 하는 일이 ‘봉사’가 아니라고 말한다.

“일방적인 관계란 있을 수 없어요. 저도 사회의 여러 딸들을 만나며 많은 것들을 배우고요. 그래서 우리 아들들과도 관계가 좋아졌어요. 훗날 이 딸들이 나 자신이나 누군가의 며느리가 될 테지요. 모두가 잘 살자고 하는 일인걸요.”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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