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 현장]온정끊긴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

노숙자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을 이끌고 있는 김하종 신부. 김 신부는 최근 들어 이용인원은 크게 늘어나는 반면 후원은 오히려 줄고 있어 급식소를 유지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성남=이재명기자

2일 오후 6시경 경기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동에 자리한 노숙자 무료급식소 ‘안나의 집’.

허름한 복장의 남녀 400여명이 50여m 떨어진 성남동성당을 빠져나와 길게 줄지어 섰다. 이들은 대부분 성남과 서울지역의 노숙자들.

이날 성당에선 안나의 집이 주관하는 노숙자 위문공연이 있었다. 공연 관람을 마친 노숙자들이 속옷과 양말 등이 담긴 선물 꾸러미를 들고 저녁식사를 위해 안나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외환위기로 실직자와 노숙자가 늘기 시작한 1998년 7월 문을 연 안나의 집은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길거리가 아닌, 식당(82석)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무료 급식소다.

안나의 집을 이끄는 이탈리아 출신의 김하종(본명 보르도 빈첸시오·47) 신부는 이날도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질서를 잡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한 노숙자들이 식당에서 서로 욕설을 퍼붓고 드잡이를 하는 모습이 목격됐다.

김 신부는 “성남과 서울지역 노숙자가 절반씩 되지만 경기 의정부시에서 오는 사람도 있다”며 “사소한 시비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급식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신부에겐 사고에 대한 우려보다 더 큰 고민이 있다. 경기불황의 여파로 5년 이상 유지해 온 급식소의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

지난해 12월 안나의 집에 전해진 위문품은 쌀 5가마가 전부. 2002년 연말에는 쌀만 32가마가 들어왔다.

한 끼 식사에 쌀 80kg과 김치 40kg이 필요한 이곳의 운영비는 연간 약 1억원. 매달 1000∼1만원씩 내는 ‘개미’ 후원자들의 쌈짓돈으로 대부분의 경비를 충당하고 있다. 부족한 돈은 김 신부가 소속해 있는 이탈리아의 ‘오블라티 선교수도회’로부터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수도회의 자금 지원이 일정하지 않은데다 급식소를 찾는 노숙자가 크게 늘어 현상 유지가 힘든 상황이다.

문을 열 당시 안나의 집 이용 인원은 하루 평균 150명 정도였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하루 평균 350명이 이곳을 찾았다.

오현숙 총무(51·여)는 “10개월 전부터 20, 30대 노숙자가 크게 늘어났다”며 “올해는 하루 이용자가 평균 400명가량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인가시설이다 보니 당국의 도움을 받기도 힘들다.

성남시 관계자는 “현행법상 명절 때 위문품 등을 지원해 주는 것 외에 정기적으로 지원을 해줄 수는 없다”며 “솔직히 무료급식소가 있으면 노숙자들이 오히려 몰리게 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 신부는 “상황이 좋지 않지만 기적이 일어날 것으로 믿는다”며 “400여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가 열심히 도와주고 있어 그나마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031-757-6336

성남=이재명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