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판 사랑과 영혼' 이씨 부인 애절한 편지

입력 2003-12-09 14:51수정 2009-09-28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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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고 하셨지요. 그런데 나와 어린 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주시고 또 말해주세요.'

1998년 4월 경북 안동시 정상동 택지지구 개발과정에서 이응태씨(1556~1586)의 무덤에서 발견돼 '조선판 사랑과 영혼'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씨의 부인 '원이 엄마'의 애절한 편지 내용이 새겨진 비(碑)가 8일 오후 안동에서 제막됐다.

안동시가 이들 부부의 아름다운 사랑을 널리 알리기 위해 현재 아파트가 들어선 당초 무덤 자리 대신 인근 정하동 가로변 녹지공원에 만든 이 비는 자연석 4개로 구성됐다.

편지의 원본과 번역본을 각각 새겨 넣은 큰 비석 2개는 이들 부부를, 그 옆의 작은 돌 2개는 아들 원이와 원이엄마 뱃속에 있던 아이를 상징한다는 것.

택지개발을 위해 고성 이씨 문중의 무덤을 이장하던 중 발견된 이 편지는 가로 58㎝, 세로 33㎝ 크기의 한지에 한글고어체(언문)로 돼 있는데 어린 아들과 유복자를 두고 31세에 숨진 남편을 사모하는 정과 안타까운 마음이 잘 표현돼 있어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이 편지는 원이엄마가 남편의 병환이 날로 악화하자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 줄기로 미투리(신발)를 삼는 등 정성을 다해 쾌유를 기원했으나 끝내 이씨가 숨지자 관속에 넣어 둔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무덤에서 발굴된 이 편지와 옷, 미이라, 머리카락을 섞어 만든 미투리 등의 유물은 현재 안동대 박물관에 전시돼 있으며 무덤은 안동시 일직면 어담리로 이장됐었다.

▽'조선판 사랑과 영혼' 이씨 부인 애절한 편지 전문▽

원이 아버지에게

병술년 ( 15 8 6 년 )유월 초하룻날 아내가

당신 언제나 나에게 "둘이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 함께 죽자"고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나와 어린아이는 누구의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십니까?

당신 나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져왔고 또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마음을 가져 왔었나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어찌 그런 일들 생각하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는가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수 없어요. 빨리 당신께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가 없고, 서러운 뜻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 어디에 두고 자식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서 자세히 말해주세요. 꿈속에서 당신 말을 자세히 듣고 싶어서 이렇게 써서 넣어 드립니다.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해 주세요. 당신 내 뱃속의 자식 낳으면 보고 말할 것 있다 하고 그렇게 가시니 뱃속의 자식 낳으면 누구를 아버지라 하라시는 거지요?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겠습니까?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겠습니까?

당신은 한갓 그곳에서 가 계실 뿐이지만 아무리 한들 내 마음 같이 서럽겠습니까? 한도 없고 끝도 없어 다 못쓰고 대강만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시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자세히 보여 주시고 또 말해 주세요. 나는 꿈에는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어 이만 적습니다 .

현대어로 옮김 :임 세권 (안동대학교 인문대학 사학과 교수 )

안동=최성진기자 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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