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폭력시위만은…”…부안사태 보는 의사의 글

  • 입력 2003년 11월 25일 18시 40분


‘제발 쇠파이프는 놓고 시위하세요.’

경찰병원의 의사가 핵폐기장 설치를 둘러싸고 정부와 주민간에 극한대립이 계속되고 있는 전북 부안사태를 두고 주민들에게 보내는 바람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서울 송파구 장지동 국립경찰병원 치과의사 박모씨(26)는 21일 오전 4시반경 주민 시위를 주도해 온 ‘핵폐기장 백지화 범부안군민대책위원회’ 홈페이지(www.nonukebuan.or.kr)에 ‘제발 전·의경들 얼굴만은 때리지 말아주세요’란 A4용지 4장 분량의 글을 올렸다.

박씨는 이 글에서 ‘매일 전·의경들을 꿰맸더니 살덩이 꿰매는 것도 무감각해진다’며 ‘아까는 왼쪽 뺨이 뾰족한 쇠파이프에 관통돼 입안과 바깥쪽 양쪽을 꿰맨 전·의경을 두 명이나 수술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또 ‘여기저기 부러져 만신창이로 오는 전·의경들을 치료하다 지쳐 누가 옳고 그른지 생각할 여유가 없다’며 ‘경찰병원은 요즘 전쟁터’라고 밝혔다.

박씨는 이어 ‘절대 시위를 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다’며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히 시위할 수 있는데 왜 각목 쇠파이프 낫 죽창을 들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이 글은 동아닷컴(www.donga.com) 등 다른 홈페이지로 옮겨져 사이트마다 1만건 이상의 페이지뷰를 기록할 정도로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네티즌들은 ‘경찰에 치우쳐 부안주민들을 지나치게 폭도화하고 있다’는 부정적 반응부터 ‘시위가 격렬한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몰랐다’는 의견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주민 오열땐 나도 눈물"

반면, 주로 주민 부상자 치료를 하고 있는 부안성모병원의 한 의사는 “격렬한 시위가 벌어졌던 19일 저녁에만 55명의 주민 부상자를 치료했다”며 “대부분 방패나 곤봉에 맞아 얼굴이나 머리가 찢어지거나 손발이 골절된 환자가 많았고 뇌출혈 환자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환자 보호자들이 ‘경찰이 시민들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팰 수가 있느냐’며 오열할 때는 의사인 나도 눈물이 날 때가 많다”며 “빨리 사태가 해결돼 예전의 조용한 부안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7월 이후 이 병원에서 시위 도중 부상해 치료를 받은 환자는 모두 280여명이다.

한편 부안사태와 관련해 시위가 격화된 7월 이후 경찰은 전치 4주 이상 중환자 30여명을 포함해 모두 235명의 전·의경이 다쳤으며 주민 역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30여명 등 모두 400여명이 부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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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부안=김광오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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