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공관 근처서 시위못하게 경찰이 집회장소 선점

  • 입력 2003년 11월 11일 18시 26분


지난달 30일 헌법재판소가 ‘외국공관 100m 이내 집회금지’ 규정이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린 이후 경찰이 제3자에게 부탁해 서울 광화문 일대 주요 장소를 선점하기 위한 집회신고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 종로구의회 김모 의원은 지난달 30일 종로경찰서 정보과 형사로부터 “집회신고를 내달라”는 전화 부탁을 받고 베트남 대사관이 있는 감사원 주변을 명시해 집회신고를 냈다고 11일 밝혔다.

이와 관련해 종로경찰서는 “감사원 주변이 청와대와 가까워 경비에더 많이 신경을 써야 하기 때문에 김 의원에게 ‘방어용’ 집회를 신고해 줄 것을 부탁했다”면서 “김 의원이 바쁘다고 해 그를 대리해 집회신고서를 작성하고 서명을 했다”고 확인했다.

헌재 결정 이후 가장 주목을 받았던 미 대사관 뒤편에 집회신고를 냈던 대림산업도 다른 단체들보다 늦게 접수창구에 도착했으나 경찰의 도움으로 먼저 집회신고를 접수시켰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

당시 종로서는 집회신고 희망자가 몰리자 ‘같은 장소에 신고를 낼 경우 먼저 온 신고자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원칙을 밝힌 뒤 방문접수도 하지 않고 방문증도 없는 대림산업 관계자로부터 먼저 집회신고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대림산업측에 발부한 집회신고서에는 대림산업이 경찰서에 도착한 오후 4시10분보다 30분가량 빠른 오후 3시40분 이미 신고서를 접수한 것으로 작성돼 있다.

종로서 관계자는 “당시 혼잡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직원이 실수를 해 대림산업측이 방문자 리스트에 누락됐고 신고서에도 시간이 앞당겨 기재돼 있지만 특혜를 주거나 일부러 먼저 접수시키지는 않았다”고 해명했다.

대림산업측은 “당시 경찰의 연락을 받고 적법 절차에 따라 신고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대엽(趙大燁)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헌법에 보장돼 있는 집회와 시위를 경찰이 마음대로 기획, 조정한다면 사회는 자유로운 토론과 의사타진의 장이 봉쇄돼 더 큰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김선우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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