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高교실 '불황 그늘' …수업료 미납 2만6090명

  • 입력 2003년 10월 5일 18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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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K고 3년생 김모군(18)은 올 들어 학교 수업료를 한 번도 내지 못했다. 중학 3학년생인 김군의 동생도 마찬가지다. 택시운전사로 일하던 홀아버지가 병석에 누우면서 가정 형편이 어려워졌기 때문. 김군은 “학교에서 수업료 독촉을 할 때마다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면서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충남 K상고는 전교생 500여명 중 150여명이 등록금을 내지 못한 상태로 미납자 중 120여명은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이 학교 행정실장 K씨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국가에서 개인계좌로 수업료를 입금해 주고 있지만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이를 생활비로 쓰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이들처럼 수업료를 못 내는 중고교생이 해마다 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저소득층 자녀 수업료 보조금은 매년 줄고 있어 대책이 시급하다.

▽실태=서울 H고는 8월 말 현재 전교생 1650여명 가운데 160여명이 수업료를 못 냈다. 서울 K고는 1680여명 중 90여명이, 경남 D고는 640여명 가운데 110여명이 수업료를 미납했다. 충북 C공고 교장은 “전교생 1240여명 중 등록금 미납자가 150여명가량 된다”며 “실업계고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많아 인문계고교에 비해 미납자 수가 훨씬 많다”고 밝혔다.

교육인적자원부가 국회 교육위원회 이규택(李揆澤·한나라당) 의원에게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8월 말 현재 수업료를 못 낸 전국 공립 중고교생은 2만6090명으로 지난해 6172명의 4배 수준이다. 미납액은 8월 말 현재 71억여원이다. 지난해는 약 17억원이었다.

분기별 수업료는 서울지역은 중학생 15만2700원, 고교생 29만8800원이며 지역별로 약간 차이가 있다.

▽저소득층 수업료 지원 줄어=국고에서 지원하는 저소득층 자녀 수업료 보조금은 해마다 줄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저소득층 수업료 국고보조금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2002년 1868억원에서 2003년에는 1072억원으로 줄었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중고교생 자녀에게 주는 보건복지부의 보조금도 지난해 940억원에서 올해는 934억원으로 줄었다.

교육부는 “올해 중학교 의무교육이 1학년에서 2학년까지로 확대돼 지원금이 줄었다”고 해명했지만 서울시 교육청 관계자는 “의무교육 확대에 따른 지원 대상 감소 폭에 비해 예산 감소비율이 훨씬 크다”고 말했다.

내년에도 교육부, 복지부, 농림부는 저소득층 자녀 수업료 지원 예산을 올해에 비해 각각 122억, 53억, 24억원씩 줄이기로 해 수업료를 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학생 상처도 심각=수업료를 제때 내지 못하는 학생들이 계속 납부 독촉을 받으면 학습 의욕을 잃고 심하면 우울증 등 정신적인 상처를 입을 우려가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학칙에 따르면 수업료를 계속 내지 못하는 학생에 대해서는 출석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으며 졸업을 시키지 않을 수도 있다.

수업료를 못 낸 103명을 출석정지 처분을 내려 가혹한 처사라는 비난을 받은 경남 창원의 C고는 최근 학비를 낸 24명을 제외한 79명 중 장기결석자 20여명을 뺀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수업료 감면 혜택을 주기로 했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윤지희 정책위원장은 “정부가 수업료 보조금을 당분간 늘려 경기 침체기에 학생들이 상처를 받지 않고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홍성철기자 sungchul@donga.com

대전=지명훈기자 mhjee@donga.com

청주=장기우기자 straw8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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